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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42)특히 날도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6.17 17:55
  • 호수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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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부판은 상복의 뒤에 늘어뜨린 천을 말하는데 슬픔을 등에 진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이를 여읜 사람의 등을 보다가 슬픔의 무게를 천으로 형상화했을까, 혹은 도무지 슬프지 않은 상주의 등에 옷자락만큼이라도 슬픔의 무게를 매어 놓은 것일까,

부판이라는 벌레에 대한 시도 있다. 짐을 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무엇이든 등에 지려고 하는데 무거운 짐 때문에 더는 걸을 수 없을 때 짐을 내려주면 다시 일어나 또 다른 짐을 지고.... 평생 짐만 지고 올라가다 떨어져 죽는다는 벌레. 시를 읽으며 부판이 올라가고자 하는 곳이 슬픔의 땅인가를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부판이란 벌레가 가는 길은 다양한 방향으로 은유 되며 사람의 길을 나타내는 거겠지.

이즈음 여성부에서 주관하는 생태학 강의를 듣는데 곤충에 대한 기본 강의를 끝내고 야외에서 직접 곤충 탐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동네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개명산은 처음이었다. 사람들 발길이 뜸해선지 풀들은 길가로 자리를 넓히고 있었고 나무들은 움츠러듦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펼치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곤충 선생님께는 숲이 온통 곤충의 세상이었다.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하니 그제야 곤충과 벌레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곤충의 세계에 세 들어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방의 알 사이에 등에 파리 종류가 알을 낳으면 그 알은 나방의 알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나방이 너무 많아서 안 된다고, 놀라운 것은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 곤충의 한편에서만 보면 매우 불합리한 일이나 전체에서 본다면 합당한 일이라는 것, 뻐꾸기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를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생존경쟁의 세상에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은 오히려 공평한 것인가,

조금 더 들어가니 자그마한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오란비 시간이 오면 계곡이 될 것이다. 그 조그마한 개천에 놀랍게도 버들치가 살고 있었고 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무엇보다 수많은 애벌레 유충들이 많이도 살고 있었다. 숲속 곤충도 잘 모르는데 수생 곤충이야 더 깜깜할 수밖에 없다. 잠자리의 유충을 수채라고 부르는 것도, 낱눈의 수가 28000여개에 달하는 종류도 있다고 한다. 매미가 땅속에서 유충으로 살듯이 잠자리 유충은 수년을 물속에서 산아가고 있었다.

특히 처음 본 날도래는 정말 신기했다. 겉만 봐서는 모래알갱이나 나뭇조각들이 그냥 엉켜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날도래는 자신의 몸에 나뭇잎이나 가지 모래 등등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 붙여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양쪽 끝에 구멍을 내서 앞쪽으로는 보면서 음식물도 취하고 뒤쪽으로는 배설물도 내보내고. 사이사이에 발을 내밀어서 걷기도 하고 세상에 오직 단 하나밖에 없는 생활형 아트하우스 아닌가, 카멜레온의 위장술보다 더 비범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아니 세상에 물속에서 살면서 무슨 접착제를 사용해 저렇게 단단하게 붙일 수가 있을까요?호기심 많은 사람이라 질문을 했다. 그 부분을 많은 학자가 연구하고 있는데 지금도 알 수 없다고, 단지 입에서 무슨 물질이 나와서 서로 붙게 하는 것이 아닐까 추론할 뿐이라고, 날도래는 동식물의 사체를 먹어 치워서 물을 맑게 해주고 자신이 먹이가 되어서 생물들에게 영양을 공급해준다고 하니 착하기도 하지. 성충이 되면 1~2주 남짓 살다가 죽는데 이럴 때는 짝짓기를 하노라 먹지도 않는다고 했다. 짝짓기의 경건함이라니, 역사를 잇기 위해 기본적인 본능조차 잊고 매진하는 성실함이라니, 생명에 대한 절절한 삶의 태도가 경이로웠다.

우리는 저렇게 최선을 다해서 사는가, 어쩔 수 없이 나를 생각하게 되고, 이쯤에서 부판이 생각났다. 혹시 날도래가 부판이 아닌가, 평생 짐을 지고 다니는 부판, 오메! 감탄하다가 생각해보니 달팽이는 집을 아예 지니고 다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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