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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16)제3장 성결교회 성장과 활동 주역들
  • (주)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6.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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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조 목사

한국성결교회 창립 제114년차가 도래하는 2020년을 맞이하여 기독교헤럴드에서는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 저서를 기초로 연재한다.

4. ‘경성성서학원’출신 목회자들의 활약(3)

네 번째 김응조 전도자는 1896년 1월 26일 서울에서 태어나 1903년부터 약 10여 년간 한학을 공부하고, 1916년 대구 계성학교 사범과를 수학한 다음 1917년 서울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했다.

1920년 9월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철원교회’에 부임하여 1년간 목회 경험을 하고, 1921년 ‘경안교회’ 주임으로 부임하여 목회하다 1922년 “안성교회‘로 옮겨 시무했으며, 1924년 서울 ’아현교회‘에 부임하여 목회하던 중 1926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1926년 ‘함경남도지방 감리사로 파송 받아 함경도지역 교회를 돌보게 되고, 이후 1929년 전라남도 ’목포성결교회‘에 부임하여 목회하면서, 1931년부터는 호남지방과 중부지방 순회목사로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1936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부흥사로 활약하며 전국교회 부흥을 위해 힘쓰게 되었고, 1953년에 ‘서울신학교’가 부산 온천동에 임시교사를 마련하고, 피난처 신학교를 할 때 교수로 임명되어 신학생들을 육성하게 되었다.

1956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에 당선되어 6.25사변을 겪은 교단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는 일찍부터 집필에 심취하여 여러 권의 신학과 신앙 서적을 출판하여 한국 교계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1961년 4월 W.C.C와 N.C.C, 그리고 N.A.E 등 국내외 연합단체 가입을 놓고, 교단의 분열과 갈등이 발발하였고, 결국 교단이 분리되어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성결신학교’를 설립하여 나가게 되어 지금은 형제교단이 되었다.

다섯 번째 곽제근 전도자는 1913년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여 1916년 졸업하고, ‘부여 금천리교회’를 개척하여 시무하다가 1917년 ‘부여 은산교회’에서도 목회했다.

이후 1920년 ‘대전교회’ 1921년 ‘부강교회’ 1922년 ‘함남 북청교회’를 개척하여 설립했으며, 1923년 목사안수를 받고 함경도 감리사로 파송 받았다.

그해 ‘경성성서학원’ 교수와 학감으로도 임명받아 열중하던 중 1927년에는 신학생들과 함께 ‘서울 신공덕교회’를 개척하여 설립하는 등 교회 개척을 많이 하는 목사로 알려졌으며, 1928년에 ‘서대문 복음전도관’ 관장을 겸하게 되고, 1929년에는 ‘한국성결교회’ 이사를 맡아 일하다가 1935년 ‘하나님의 교회’ 사건의 주동자로 연루되어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여섯 번째 박현명 전도자는 1903년 7월 8일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엄격한 유교 집안의 교육에 따라 한학 공부를 하다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투를 잘라버리고,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새로운 학문에 심취하게 된다.

그러나 집안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중학 강의록을 열심히 공부하다가 기독교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 신앙생활에 매진하였다.

나이 만19세에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려고 지원했지만 나이가 어린 까닭에 입학할 수가 없었으나, 교수들이 면접에서 그의 인격이 준수하고 특출하여 특별입학을 허가받아 1922년에 입학하여 1925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독립문교회’에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하였고, 1929년에 목사안수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동경성결교회’에서 시무하면서 ‘일본 동경신학교’ 청강생으로 공부하는 등 학구열이 대단하여 6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결과 훌륭한 신학자가 되었다.

1934년 ‘경성성서학원’으로부터 교수 임명을 받고, 귀국하여 ‘체부동교회’ 주임교역자 겸 교수로 후학양성에 힘썼으며, 1943년 일제 폭정에 의해 7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해방을 맞아 교단 재건에 앞장서 일했으며, ‘한국성결교회’ 총회에서 4회(1대~3대, 5대)나 총회장을 역임하면서, 미국 주요 신학교에서 2년여 동안 연수하며, ‘한국성결교회’ 후원을 홍보하는 등 교단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6.25동란 중에 최석모, 이 건 목사 등과 함께 북한으로 납치되어 순교했으며, 그의 저서로는 '고대 기독교 박해사'가 활천에 104회나 연재되었고, 그의 자녀로는 장남 박상중 목사(갈현교회 명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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