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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13)제3장 성장의 시작과 활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5.21 11:13
  • 호수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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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직 목사

한국성결교회 창립 제114년차가 도래하는 2020년을 맞이하여 기독교헤럴드에서는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 저서를 기초로 하여 연재한다.
 
한국성결교회가 초기에는 서울에서 “동양선교회 경성복음전도관”으로 출발하여 노방전도와 축호전도 등으로 장터와 길거리에서 부흥집회를 열고,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4중 교리복음과 영혼구원 그리고 삼위일체하나님을 통해 나타난 간증으로 전도하여, 한국에 이미 들어와 있는 장로교회나 감리교회 그리고 구세군 등에 출석 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명직 전도자는 1911년 ‘일본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와 ‘경성복음전도관’에 합류하여 개성교회에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하면서 부터 한국성결교회에 대한 상황파악을 면밀히 하고, 조직 확장과 발전계획을 구상하게 된다. 
2. 이명직 목사의 헌신과 성결교회 성장
이명직 전도자는 1890년 12월 2일 서울 충정로에서 ‘대궐의 주전원 주사’로 일하던 이 성택의 맏아들로 태어 낳으나, 그의 부친은 청백리의 공직자로서 가난하기 그지없어 생활이 매우 어려웠지만 맏아들만은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심정으로 교육에 힘쓰게 된다.
부친의 권유로 19세에 부인 박 감은과 결혼하고, 1년 후 1909년 정치학을 공부하기위해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때 나이 20세 일본에 도착한 이명직은 어떤 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느 날 동경시내 거리를 거닐던, 그때 한 모퉁이에서 요란한 나팔소리와 북치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을 보고,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상황을 살펴보게 된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구세군의 전도대가 예수천국을 외치며,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목격하고 집회내용을 경청하던 중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마음에 이상한 충동을 받고 돌아오게 된다.
몇 일후 학교진로상담을 위해 동경 YMCA를 찾아가 총무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김정식을 만나 상담하던 중 기독교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제부터는 기독교인이 되에 세상에서 큰 뜻을 이루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매 주일마다 YMCA 회관으로 출석하여 청년들과 예배를 드리고, 멤버들과 신앙 활동을 하면서 김정식 총무로부터 동양선교회(O.M.S)에서 운영하는 ‘동경성서학원’을 소개받고 입학하게 되어, 1909년 5월 3일 성령강림절에 그곳에서 일본인 나까다(中田)감독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는 ‘동경성서학원’에서 열심을 다해 성경을 읽히며, 기도생활에 심취하는 가운데 성령세례를 받게 되고, 서울에 계신 부모님 전도에 우선하기로 결심하면서, 전도편지를 써 보내는 등 노력한 결과 서울의 북 감리교회의 신자가 되게 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편지로 전도를 받고, 유교법도를 지키려 했지만 아들이 예수쟁이가 되었고, 죽어도 돌이키지 않겠다는 아들의 신앙결심에 장남으로부터 제사를 받지 못 할 바에 는 예수를 믿는 것이 좋겠다하여 온 가정이 예수 믿고 교회에 출석하기로 맘을  바꾸게 되어 가족구원을 완성하게 됐다.
이명직은 1911년 22세의 나이로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전도자의 자격을 O.M.S로부터 부여받아 한국으로 돌아와 ‘경성복음전도관’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1914년 왓슨, 카우만, 길보른, 토마스 선교사들로부터 목사안수를 받고 본격적인 목회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께 헌신을 약속했으며, 한국성결교회 부흥과 발전에 목숨을 걸기로 맹세하게 되는데 그의 나이25세였다.
이명직은 1911년 개성교회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하고, 1914년 부여 귀암교회 부임, 1916년 경성성서학원교수 겸 아현교회 목회, 1920년 경성성서학원 규칙 초안 작성, 1921년 동양선교회(O.M.S)감독의 고문, 1922년 한국성결교회교단지‘활 천’주필, 1924년 한국성결교회 이사, 1925년 한국성결교회 조례편찬, 1929년 경성성서학원 부원장 및 유지재단이사, 1933~4년 한국성결교회 초대 및 2대 총회장, 1935년 경성성서학원 원장, 1938~9년 한국성결교회 6대 및 7대 총회장, 1940년 경성신학교 교장, 1941년 동양선교회 재단이사장, 1951년 서울신학교 교장, 1959년 서울신학대학교 학장, 1961년 정년퇴임과 명예학장 취임, 1973년 3월 30일 오전 7시 30분 소천 하므로 일기를 마감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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