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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34)‘사회적 거리두기를 책과의 거리 좁히기로’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4.01 16:34
  • 호수 477
  • 댓글 1
          위 영  작가 (본지논설위원)

독서를 시간 남으면 하는 여가 행위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더구나, 살아가는 방법이 하 많아서 뭐라 할 일은 아니다만 가장 고급한 것을 가장 저급한 자리에 가져다 놓는 형국이야, 
 <매화를 사랑했던 이덕무는 매화의 짧은 생애가 안타까워 조촐한 가지를 꺾어 화병에 담고 거기에 밀랍으로 매화를 만들었다. 꽃이 꿀을 만들고 꿀이 밀랍을, 다시 밀랍으로 꽃을 만드니 윤회매라 이름 지었다. 연암이 이덕무에게 배운 방법으로 윤회매를 만들어 팔았다. “꽃병에 매화 11송이를 꽂아 팔아 돈 스무 닢을 받았소. 형수님께 열 닢 드리고, 아내에게 세 닢 주고, 작은 딸에게 한 닢, 형님 방에 땔나무 값으로 두 닢, 내 방에도 두 닢, 담배 사는데 한 닢을 쓰고 나니, 묘하게 한 닢이 남았구료. 이렇게 보내 드리니 웃으면서 받아주면 참 좋겠소” 이덕무는 그 한 닢으로 구멍 난 문을 발라, 차가운 겨울 이명(耳鳴)도 나지 않고 손도 트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연암이 가짜 꽃을 만드는 모습, 그 꽃을 팔아 스무 닢 받아 먼저 형수와 아내와 딸, 마지막 남은 한 닢의 용처라니....그 글을 읽은 후 울적했던 마음이 마치 이른 봄 매화 만나듯 환해졌다. 햇살 환하면 그늘 짙듯이 여명 밝아올 무렵은 어둡지, 이런 자연 현상은 어떤 깊은 철학이나 진리보다 단순명료하게 삶의 결들을 선명하게 내비쳐 주곤 한다.
 의도치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단어를 실천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더라, 예수님의 생애를 봐도 거기 어디 즐거움이 자리하고 있던? 生의 근원 속에는 슬픔이 고여 있어. 물론 사소한 기쁨과 작은 즐거움들을 만나는 쉼이 없지는 않지만... 코로나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겼지. 블루가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어쩌면 사람들이 너무 블루 할 틈이 없으니까 이런 시간이 다가왔는지도 몰라, 생로병사라는 단어를 살펴보렴, 늙고 병들고 죽는 거잖아, 가장 명랑해 보이는 생도 사실 너와 엄마가 생명을 걸고 이루어낸 고난의 과정이기도 하잖니, 그러니 인생 자체가 블루 할 수도 있다는 거지, 
 딸아, ‘사회적 거리두기를 책과의 거리 좁히기’로 회자되는 문장은 참 좋더구나. 독서는 블루를 이기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이야. 모든 책에는 문제가 들어있고 그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길이 기록되어 있어. 그러니까 독서는 수많은 문제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고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하지. 수학문제를 많이 풀어본 수험생과 전혀 풀어보지 않고 시험을 보는 사람과의 차이는 어떻겠니? (문제 속에는 사람, 삶 사랑 증오, 관계 역사 정치와 민주주의 신앙등 수많은 단어가 들어있지) 생은 한정되어 있어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 역시 아주 좁을 수밖에 없어. 경험치를 가장 넓고 깊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서뿐이지, 삶의 의미가 돈이나 권력과는 전혀 다른 길에 있다는 지혜를 깨닫게 하는 것도 독서의 힘이더라. 독서는 가장 편한 자리에서 편한 자세로 할 수 있는 가장 고급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차경’이란 단어를 참 좋아해. 차경은 울타리 안과 밖을 조화롭게, 집 밖 다른 풍경을 집안 풍경과 연결시키는 건축기법인데 엄마의 차경은 조금 달라, 가령 깊고 고요한 숲을 거닐 때 그 풍경은 실제 내 것이 아니지만 온전히 내 것이기도 하지, 차경은 소유를 벗어난 진짜 소유를 품고 있는 단어라고나 할까, 아름다운 정원의 주인은 소유자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는 자라고 선언하고 있는 단어야. 깊은 독서 역시 놀라울 만큼 넓고 아름다운 차경이지.  
 십자가를 묵상하는 시간이다. 십자가 없는 인생 어디 있으랴,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네 삶에 십자가가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그래서 자기 십자가,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 십자가 지면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지 마라는 말씀도 숨어있다. 그저 매순간 열심히 살며 최선을 다하고 허탄한 것들에 관심두지 말라는 사랑어린 당부시다. 더 깊이 숨어 있는 뜻도 보이는구나. 남과 비교 하지 마렴. 상당히 많은 사람들 고통의 근원이 여기에 상재되어 있단다. 세련되고 우아한 삶의 양태는 내 삶을 내가 인정하는 것, 단순해보이지만 수많은 사유가 포진하고 있는데 그 결을 나누는 것이 독서력이기도 하지.
 어지러운 봄날이지만 독서력 깊은 좋은 사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규서에게 몇 자 적는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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