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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의 복음사역(15)나사렛 예수가 보여준 기도의 삶(I)
  • 깅영한 박사(숭실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02.12 17:28
  • 호수 472
  • 댓글 0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사복음서(마태, 마가,누가, 요한복음) 저자들은 역사적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는 기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 속에서 사셨다. 나사렛 예수는 참 인간(vere homo)이었기에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통 속에서 영적으로 새로워져야 했다. 예수는 새벽 미명에 기도했으며, 한적한 곳에서 기도했으며, 구하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도했으며, 중대한 일을 앞두고 기도했다. 예수가 드린 기도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진정한 기도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사셨고 영적 안식과 평강을 누렸다. 역사적 예수가 행하신 기도는 오늘날 우리가 행해야 할 기도의 본이다.

4. 라아너 학파가 말하는 초자연적 실존성에서 야기되는 “끊임없는 기도”의 맹목성

로마 천주교 라아너 학파(die Rahner Schule)는 “초자연적 구속은혜”(übernatürliche Heilsgnade)를 주장한다. 이는 기독교 이전 인류들에게 “항상 어디서든지” 현실적이고, 개별인간들에 있어서 사건이 되는 가능성으로서 제공되어 있다. 하나님은 은혜의 제공자로서 그의 자유로운 자기 전달을 항구적으로 불가피적으로 자유 속에 있는 피조적 인간의 선험적 주체성에 부여하신다. 이것이 “초자연적 구속은혜”(übernatürliche Heilsgnade)다. 이것은 인류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구속과정에 속하는 것인 데 말씀, 의식과 종교적 사회성에만 제한되지 않고 어디서든지 수행된다.(Karl Rahner, Grundkurs des Glaubens. Einführung in den Begriff des Christentums, Freiburg, Basel u. Wien, 1976, 149.) 여기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가장 깊이 그의 본질적 깊이 속에서 신의 은총을 향해 역동화되고, 목적 지향되어 있다. 인간은 신의 절대적인 자기 전달의 사건(Geschehen der absoluten Selbstmitteilung)이며, 절대적인 근접과 직접성으로 나아가는 신의 자유롭고, 순수하고, 용서하는 자기 전달의 사건이다. 여기서 라아나 학파는 보편구원사 신학을 기획하고 있다.

이러한 라아너의 보편구원사 신학에서는 창조 은총(gratia creatoris)과 구속 은총(gratia redemptoris)이 동일시됨으로써 구속일원론(Heilsmonismus)이 야기된다.(김영한, 『현대신학과 개혁신학: 현대신학에 대한 비판적 조명과 개혁신학의 진로』, 서울: 성광문화사, 1996, 69.). 여기서 계시는 존재론적 성격을 지니고 기도도 존재론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계시는 인간의 존재의 깊이 속에서 일어나는 선험적 자기 전달이다. 이는 “색갈 없는 밝음”으로서 근본적으로 선천적으로 인간의 내적 의식을 밝히는 인간의 선험적 경험으로써 실현된다. 신의 선험적이고 초자연적 은총은 인간적인 현존재의 선험적 가능성으로부터 실현된다.

가톨릭 보수신학자 베네딕토 16세 라칭거(Joseph Ratzinger)도 이러한 의미에서 기도를 이해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느낌과 존재의 밑바탕에 조용히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일러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라고 부른다.” “기도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과 고요히 내적으로 함께 있음이다” 이러한 라칭거의 기도 개념에는 인간이 자기 본성인 초자연적 실존성으로 하나님과 이미 그의 존재 깊이에서 소통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자기 전달을 받고 있다는 라아너 학파의 보편구속사 신학의 입장에 정위되고 있다. 이러한 라아너 학파나 라칭거의 입장은 중세 스콜라적 신학으로서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적 입장에 서서 어거스틴이나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인간 존재의 전적 부패성을 도외시하는 자연신학적 기도 개념이다. 이러한 기도는 성경적인 기도라고 볼 수 없다.

예수는 기도의 본질을 이방인이나 인류 일반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이 기도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아 하나님을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즐겨 받으시는 기도의 태도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 아들임을 알고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예수가 가르치신 기도는 라아너 학파가 말하는 인간이 존재 깊이에서 신의 절대적 자기 전달을 제공받고 있는 초자연적 실존성으로서의 존재론적 기도가 아니다. 예수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청원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는 인격적 요구하며 드리는 소박하고 심령이 가난한 기도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행위다. 이것이 예수가 가르치신 기도의 본질이다.

깅영한 박사(숭실대학교 명예교수)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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