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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1.0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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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이유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다.’ 톨스토이의 이 말을 반세기 만에 나브코프는 뒤집었다. ‘행복한 사람은 이유가 각각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불행한 사람은 대개 비슷하다.’  톨스토이와 나브코프 모두 일리가 있다. 철학자가 행복을 정확하게 정의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 듣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랑의 가장 특징은 허용과 배려일 것이다. 노년의 톨스토이는 사랑이란 곁에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의 곁을 조금 둬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시대를 디엑스 신드롬(de-ex syndrome)의 시대라 한다. 디엑스 신드롬은 ‘과잉으로 인한 결핍(deficiency by excess)'을 오늘날 사회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한 개념이다. 뜨겁게 달궈진 불판에 물을 부으면 불이 끓기도 전에 튕겨서 화상을 입히고 주변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넘치는 과잉이 오히려 사회구성원들에게 해를 가한다. 여기저기서 끓어오르는 사회적 갈등으로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화상을 입은 환자들로 들끓고 있다. 
법적소송의 과잉, 입시교육의 과잉, 정치사상의 과잉, 언론보도의 과잉 등등. 이런 과잉 현상은 ‘사려없는 참여’와 ‘무책임’이라는 사회풍조를 유발한다. 남들이 하는데 나도 한 번 이라는 사려없는 참여자들이 늘어나고, 나보다 더 한 사람도 있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냐 하는 무책임에 기반한 사회행동들이 가열된다. 어린이들까지 정치문제로 싸우고, 원로들까지 언쟁과 비방이 일상화된 사회는 분명 위험사회임에 틀림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마저 디엑스 신드롬에 빠져서 사회갈등을 해결하기보다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정부와 사회가 놓친 약자들과 부상자들을 받쳐주고 치료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희망의 언덕, 의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며 낮은 자들에게 소망이 되고 거센 풍랑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생명의 그물이 되는 것이다.  천년이 지나고 사회적 이슈가 바뀐다 할지라도 교회의 원리와 핵심가치는 오직 하나, 십자가의 사랑이다. 사회현상에 과열되어 쓴물을 쏟아내는 교회가 아니라, 갈등과 불안으로 죽어가는 이 사회를 살려내는 생명의 단물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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