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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의 복음사역(8)III. 가르침
  •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
  • 승인 2019.11.20 17:24
  • 호수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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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행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 사역은 설교, 치유, 가르침으로 특징지워진다. 설 교, 치유, 가르침은 예수 복음 사역의 3대 사역이다. 복음서는 이 3가지 사역 가운데 설교나 가르침 보다 그의 치유 사역에 관 하여 더 많이 기록하여 전해주고 있다.

2) 성령 안에서 옛 계명의 내면적 역동화

이렇게 가르치는 우리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거나 성다수자에 속해있다고 교만한 마음이나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만일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자기 의를 뽐내는 위선에 자리에 서는 것임을 각성해야 한다.

예수는 오늘날 신자 된 우리들에게 바리새인과 세리의 태도를 가르치신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9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10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1절).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12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3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9-14)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스스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면서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동성애 행위”도 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매주 주정 헌금과 십일조 드린다고 감사한다면 우리는 신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토색, 불의, 간음, 동성애”를 하지 않았다는 외형적인 율법 규례이행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속에 끊임없은 죄의 욕망이 일어나는 것이 대해서 겸허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 죄 욕망 죽이기와 예수와 새로운 영적 연합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성경을 인용해서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의 입법 등에 반대하는 것은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일처럼 아주 사소한 일이고, 오히려 교회가 긍휼과 정의를 상실하고 부패하는 것은 낙타를 삼키는 것과 같다는 주장에 대하여 필자는 예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다음같이 보완하고자 한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에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공공선인 정의와 선행을 하는 데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율법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의 입법 등에 반대하고 저지하는 것은 성다수자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양심과 사회적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며 더나아가 이러한 반대운동에 보완적으로 선행운동으로 신자와 교회는 사회적 소외자들, 이주민들, 탈북민들 돌봄 등 사회적 선행 아젠다를 실천하여 사회적으로 신자들 내면에서 사회를 향하여 우러나오는 긍휼과 정의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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