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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09.0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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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세대가 경험한 것을 손주들도 경험하게 하는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것은 부동산, 정치, 군사, 문화보다 거짓말 하지 마라, 남에게 피해주지 마라. 늘 행복하게 살아라 등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모두 배운 셈이다. 정규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취업한 지식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거짓말 않기, 이기주의, 정신적 스트레스이니,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것이 약이다.
위험의 외주화, 분노의 일상화, 거짓의 공론화. 더 이상 이런 대결구도 속에서 우리의 자녀가 살도록 해서는 안 된다. 가난의 대물림보다 더 비참한 것은 가난한 사고의 대물림이다. 할아버지들끼리 화해하고, 아버지들끼리 싸우지 않아야, 아들 부부가 보고 배운 바가 있어 반성하고, 자식에게는 싸우지 말라고 가르칠 수 있다. 싸우는 집에는 질문이 없다. 긴장과 불안 속에서는 오직 생존 본능만 작동할 뿐, 창조적인 질문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싸우는 어른 옆의 아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살 길을 찾는데 익숙해 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완전한 선이 아니다. 정의에 대한 가능성도 있지만, 부정의에 대한 경향성도 상존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정치는 완전한 선이 아니다. 어떤 정치 집단도, 정치가도, 정책도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교회는 이런 불완전한 정치를 비판할 뿐 아니라 불완전한 정치를 행하는 인간의 경향성과 한계성을 지적하므로써 자신의 실체를 늘 균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교회는 가슴에 성경을 품고, 눈을 세상을 향하며, 손은 약한 자들과 함께 하되, 걸음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야 한다. 정치에 매몰된 교회는 항상 교회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정치집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교회에 국회의원같은 목사가 너무 많다. 당의 주장을 대변하는 목사는 목회를 할 것이 아니라 정당정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 본연의 연구와 강의활동보다 비리를 수집하는 학자는 차제에 경찰의 길로 가는 게 좋겠고, 자기가 원하는 자를 교수로 채용하려는 총장은 브로커로 개업하는 게 좋겠다. 강단에서 말씀이 사라지고, 정치이념과 정책에 대한 찬반으로 흥분하는 교회와 신학교가 잘못을 멈추고 돌아서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30년이 지나도 이념으로 싸울 것이며, 이 땅에서 교회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싸우지 말라! 남을 헐뜯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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