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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23>독립위해 3대가 죽임당한 서재필(1864∼1951)
  • 김헌곤(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관장)
  • 승인 2019.04.12 14:40
  • 호수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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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은 전남 보성출신으로 서광효의 둘째 아들이다. 어렸을 때 충청도에 7촌 아저씨 서광하에게 입양되었고, 1882년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부정자(副正字)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 김옥균 ·박영효등 개화 인사들과 교제하며 개화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884년 12월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천하로 실패하자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때 서재필은 일본에서 언더우드선교사를 만나 한국어를 가르치고 대가로 영어를 배웠다. 언더우드는 특히 그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자신의 형 존 언더우드(타이프라이터 발명 가)에게 연락하라며 소개장을 써주었다.

그는 1885년 4월 박영효·서광범과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때 서재필의 가족은 역적으로 몰려 부모와 형과 아내는 음독자살하고, 동생 서재창은 참형되었으며, 두살 된 외아들은 굶어 죽었다. 3 대가 멸문지화(滅門之禍) 당한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영어공부를 하였다. 1889년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해리힐맨 고등학교 졸업 당시 고별 연설자가 될 정도로 성적이 특출하였고, 1893년 지금의 조지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에서 2등으로 졸업한 뒤, 학교의 병리학 강사가 되었다.

다음해 6월 미국 철도우편사업의 창설자 암스트롱의 딸과 결혼하고 워싱턴에서 병원을 개업하 였다.

한편, 1894년 조선에서는 갑오개혁으로 대개혁이 단행되고 있었으며, 동시에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개화파들 에게 내려진 역적의 죄명이 벗겨졌다. 그 뒤 내부대신이었던 박영효가 귀국 을 종용하자, 사업을 정리하고 1895년 12월 말에 귀국하였다. 귀국 직후 1896 년 1월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 귀국 후 정부의 개화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의 여론을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 하는 데 성공하였다.

『독립신문』은 우리 나라 최초로 발간된 민간신문으로 순 한글로 간행되었다. 이어 1896년 7월 2일 독립협회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1897년 11월 국민의 성금을 모아 독립문을 건립하였다. 그는 신문논설과 강연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서양의 사정과 세계의 형편을 알리는 한편, 민족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민주주의 사상을 가르쳤다.

그러나 수구파들에게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그리하여 다시 병원을 개업 해야만 했다. 1919년 본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전 재산을 정리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그는 우리나라 독립을 세계여론에 호소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였다.

한편, 재미교포들을 결속시키고 독립운동후원회를 만들었다. 1922년 워싱턴에서 군축회의 가 개최되자 우리나라의 370여 단체의 서명을 받은 연판장을 제출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각국 대표와 세계 여론에 호소하였다. 1925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범 태평양회의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해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과 한국에서의 만행을 폭로, 규탄하며, 독립운동의 지원을 전세계에 호소하였다.

그는 일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가재(家財) 가 완전히 파산되어, 다시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강사로 나가는 한편, 여러 병원의 고용 의사로 종사하기도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고 미군정이 실시되자, 미군정장관 하지(Hodge, G. R.)의 요청을 받아 1947년 미군정청 최고정무관이 되어 귀국하였다.

그러나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선포되고 미 군정이 종식되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죽었다. 서재필의 일생은,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골고다의 험산준령 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헌신하였다.

김헌곤(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관장)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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