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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22>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1882~1931)
  • 김헌곤 목사
  • 승인 2019.03.27 20:46
  • 호수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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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교회 담임으로 목회에 전념

손정도 목사는 평남 강서군 증산면 출신으로, 23세에 예수 믿기로 결단하고 다음날 상투를 잘랐다. 선교사 문요한 (1874-1963)목사와 함께 고향으로가 사당을 부수는 신앙적 결단을 보이기도 했다.

손정도의 메모에 의하면 그날 밤 “도망가라 도망가라!”는 “성령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날 밤 손정도는 속옷 바람으로 집을 나와 눈 덮인 산에서 밤새 철야기도를 하다 실신하였고 인근 주민들에 의해 구출을 받았다. 손정도는 문요한 선교사 집에 머물면서 일하면서 1908년에 숭실중학을 졸업하였다.

손정도는 13세 때 2살 위인 박신일과 결혼하였는데 시집에서 견디지 못한 부인은 평양으로 남 편을 찾아왔으며 평양 기독병원에서 잡역부로 일하면서 남편의 학비를 돕고 자녀를 양육하였다(당시 자녀는 진실,성실, 두 딸이 있었음).

손정도는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서울로 유학길을 떠나 협성신학당(현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목회자로 훈련받았으며 또한 전덕기목사, 이승만, 이동령, 이시영, 장지영, 이준, 노백린,  조승한, 이갑, 최남선, 이필주 등과 어울려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손정도는 1910년 협성신학당을 졸업하고 진남 포교회를 맡아 목회하였다. 1911년 목사안수를 받은 손정도는 만주지역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손정도 목사는 만주의 안동, 길림을 비롯한 간도지방을 담당한 순회전도자가 되었고 그의 전도활동은 사실상 독립운동이었다. 1912년 3월 5일 제5회 조선예수교감리회연회 때도 손정도 목사를 만주 봉천 북지방에 파송키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만주에서는 기독교 애국지사들을 제거키 위한 가쯔라수상 암살음모사건 때문에 검거선풍이 일어났다. 가쯔라(1849-1913)는 제1차 내각 때 영.일동맹을 맺고 노일전쟁을 강행해 을사보호조약을 맺게 한 한국인의 원수이다.

손정도 목사는 러시아 방문 길의 가쯔라 수상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일경의 요청을 받은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고 출옥 후에도 건강이 악화되었다. 일본 경찰은 모의사실을 끝내 부인하는 손정도에게서 아무 협의를 캐지 못하고 풀어 주었으나, 손정도 목사가 황해도 금광을 습격하여 북간도의 한인 무관학교를 세우고 무기를 대주려 하였다는 협의로 다시 체포되어 거주제한 1년이란 행정처분을 내려 전남 진도로 유배당했다.

손 목사는 귀양살이 중에도 복음 전파와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사역에 열중하였다. 1915년에는 감리교의 모교회이며 애국지사들의 요새인 정동교회 담임으로 부임하여 목회를 1918년까지 하였다. 교인 수는 급증하여 1917년에는 교인 수가 2,283명을 헤아려 단일 교회 중 가장 큰 교회로 부흥하였고, 교회 중축 공사를 하였으며 예배풍경도 변화시켜 남녀를 구분하는 휘장도 없애 버렸고, 교회 안에 의자를 놓아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애국지사들은 상해로 모였고 4.11일에는 상해 임시정부가 조직되었다.

이 때 손정도 목사는 임시 의정원 의장을 지내다가 독립운동 집결지를 만들기 위해 1921년 만주길림으로 갔다. 손정도 목사는 길림에 한인교회를 개척하여 동포들을 신앙으로 뭉치게 하였고, 억울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목회를 하였다. 손정도 목사는 1931년 2월 19일 길림에서 50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바라고 기도하며 힘썼던 조국광복을 보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다. 손정도의 일생은 ‘걸레정신이다. 더럽고 냄새나며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때 나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조용히 퇴장하는 것이 걸레정신이었다.

김헌곤 목사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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