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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제3회 목회자콘퍼런스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호의 건강한 신앙공동체운동의 의의 (12)
  • 정일웅 박사
  • 승인 2019.02.01 17:36
  • 호수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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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의 역사

특히 그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매우 중히 여기고 실천하도록 힘썼으며, 성만찬의 신학에서도 주님의 만찬에 함께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성경적인 관점을 더 잘 이해하였다.1)1) Bic, Milo, Vlicke in die Geschichte des tschechischen Protestantismus, in: Coemnius, Verdaechtnis der sternenden Mutter, der Bruederunitaet, Duisburg-Ruhrort, 1958, pp. 16-21..

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는 1646년에 교회법을 준비하기 위하여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진리(칭의)와 그리스도의 법에 순종과 교회의 훈육 등을 교회 생활의 근본토대로 삼게 된다. 그러나 이 교회가 믿는 칭의는 단순한 믿음만이 아니라, 더 깊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었다. 믿음과 사랑에 근거한 칭의가 확실한 소망을 가져다주는 참 복임을 믿었다. 이와 같이 믿음과 사랑에 기초한 형제연합교회의 칭의론은 선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톨릭교회의 입장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그리고 사랑은 오히려 기독인들에게 당연히 나타나야 하는 성령의 열매로 인식되었고, 사랑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종하는 증거로 이해하였다. 그 때문에 형제연합교회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올바른 믿음의 외적인 증거로 삼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행위 없이 말로만 고백하는 신앙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였고,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짊어지고자 하는 결단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원하는 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형제연합교회는 훈육을 신앙의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훈육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짊어지게 하는 일에 큰 도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훈육은 폭력이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애정에 근거한 사랑의 훈육이었기 때문이다.2)2) Comenius, Vermaechtnis der sterbenden Mutter, der Bruederunitaet, Ebenda, pp.99.

폰 프라그는 총회를 통하여 형제연합교회(Unitas fratrum)를 공식 명칭으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정치조직도 장로제도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것은 칼빈의 제자 요한 낙스(J.Knox)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한 장로제도(오늘의 장로교회)보다 훨씬 앞선 역사를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제비뽑는 방식으로 3명의 성직자를 선출하고, 이를 장로로 부르며, 그중에 한 명이 수석 장로가 되어,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감독(Bishop)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1499년 이래로 10명으로 구성된 협의회로 확대시켰고, 기존 3명의 장로들과 함께 최고의 의결기관이 되었다. 형제연합교회의 총회는 교회의 봉사자들로서 10인의 장로협의회와 목사들, 그리고 집사들로 구성하였다.

형제연합교회는 1494-1528년 사이에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기간에 교회를 정착시키고, 가톨릭의 종교박해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복음의 사도적인 신앙을 견지하고, 당당한 프로테스탄트교회로 성장시키는 일에 3명의 지도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신학자 루카스 폰 프라그(Lukas von Prag)와, 얀 아우구스타(Jan Augusta), 그리고 얀 불라흐스라브(Jan Blahslav)라는 세분들이었다. 1517년에 루카스 폰 프라그(1640- 1520)는 형제연합교회의 첫 번째 감독이 되었다. 그는 신학자로서 형제연합교회의 조직을 확대하며, 지금까지 형제연합교회가 진리 수호를 위하여 그간 폐쇄적이며, 분파적이었던 모습에서 개방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즉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더욱 성취하기 위하여 복음에 대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정일웅 박사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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