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신평안교회 안종기 원로목사 사모작가

차안에서 혼자 음악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음악 듣기가 좋아서 운전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공간이 작으니 조금만 크게 틀어도 음악으로 가득 찹니다.  신실한 사모라면 찬송가를 들으면서 은혜 속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데  아뿔사, 제 차안에는 찬송가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은혜스러운 멘트 가득한 기독방송을 듣지도 않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FM은 나만의 고정 방송입니다. 이십대 후반부터 듣기 시작했으니 긴 시간을 함께 한 절친인 것은 확실합니다만 그렇다고 그를 많이 혹은 깊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은 아주 너그럽고 다정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나를 다 받아준다고나 할까요, 나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많이 합니다. 화나는 일이나 분노 혹은 기쁘거나 슬픈 일들을 생각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아주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음악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주는 힘, 들어주는 힘, 바라봐주는 힘이 있는 거죠. 음악은,
 오늘도 음악을 듣다가 문득 사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며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사모님. 그러나 나는 사모님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사모님이 외롭다는 것, 외로워서 제 글을 읽고 저와 전화를 하고 싶었다구요. 우린 세 번 가량 전화로 꽤 긴 통화를 했습니다. 사모님은 주로 나에 대해서 물으시고 자신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잘 안했어요. 내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죠.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요. 어쩌면 나는 그때 사모님께 그저 들어주는 있어주는 바라봐주는 음악이 되고 싶었을 거예요.
 세상은 온통 병원이고 사람들은 모두 환자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거대한 종합병원이나 동네 병원 간판은 차치하더라도  음악치료 미술치료 이야기치료 기치료  뇌 치료 독서치료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료를 권하고 있으니요.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한데 기이하게도 병소는 단 하나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마음>이라는 것. 이 미묘한 물질에 의해 우리는  휘둘리죠. 주인인데 전혀 주인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생기발랄하며 천지분간을 못하는 오직 자기만 생각하는 철없는 그것이요.  다스려지지 않는 분노나 슬픔이 음악으로도 진정되지 않아 허우적거리게 될 때면 마음을 꺼내는 작업을 하곤 합니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서 정리하는 나만의 인싸이트라고나 할까요.  마음 나와라. 소리 없는 말로 명령하며 내 속에서 마음을 꺼내는 거죠. 약간 길고 가느다란  은은한 빛깔의 회색 상자. 가만히 상자를 열고 그곳을 들여다봅니다. 물론 세상의 거의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그곳에는 내가 해결 못하는 문제들이 들어 있습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 좀 시간을 두고 보자, 그게 그렇게 화나는 일이었구나.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전전긍긍하지 마. 그냥 그분께 맡겨. 이 구석 저 구석 색색의 마음들을 뒤적이며  가만히 이야기해줍니다. 그리고 다시 상자를  닫은 뒤 마음자리에 밀어 넣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가벼워져 있어요. 굳이 표현을 하자면 문제의 객관화 정도라고나 할까요. 훨씬 산뜻해져서 그제야 기도할 수 있게 되더군요. 너무 무거울 때면 기도가 막히기도 하잖아요.
 차가운 겨울입니다. 옷 벗은 나무들은 얼핏 쓸쓸하고 외로워  보입니다만 그저 녹음과 단풍을 보내버린 슬픔 속에 갇혀 있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무연히 다시 올 새순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응시하고 있을 거예요. 빈 몸으로 서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며 자신의 존재를 가장 사랑하는 시간, 사실 빈 가지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풍경도 다른 어느 계절 보다 풍성합니다. 낮에는 푸르른 하늘이 가득 스며들고 밤이 되면 아득한 별들이 품으로 내려옵니다. 하얀 달무리를 거느린 달도 나뭇가지에 살짝 걸쳐 있습니다. 그렇게 달 밝은 밤이면  먼데 산의  산그리메들 조차 나무 사이로 거침없이 스며드는걸요. 겨울은 수선스러운 수다가 아닌 고요한 침묵의 시간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나무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입니다. 
 
친애하는 사모님께 몇 자 글월로 겨울 안부를 묻습니다. 

위 영 사모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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