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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 코메니우스연구소·기독교학술원, 제3회 목회자 콘퍼런스 (2)코메니우스 교육신학사상의 역사적 배경②
  • 정일웅 박사
  • 승인 2018.12.31 19:25
  • 호수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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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되자,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여러 귀족들과 백성들이 분노하게

되었고, 원래 후스가 콘스탄츠공의회에 소환될 때, 그의 신변보호를 약속했던 지그문드(Sigmund:1368-1437)왕이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지 않아서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비난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후스를 추종하는 여러 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이들에 의하여 보헤미아(체코)전역에서 가톨릭교회를 거부하는 교회개혁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저항운동의 여러 그룹들이 연합하여 소위 ‘후스운동(교회개혁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프라하 신앙4개 조항을 만들어 발표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후에 후스파교회의 신앙고백의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보헤미아의 종교개혁자 요한후스를 추종하는 후스운동은 3개의 그룹역사로 발전하게 된다. 첫째 그룹은 타보리텐(Taboriten)파로 불리는데, 이들은 타보르(Tabor)라는 도시에서 시작된 그룹으로 매우 급진적이며, 복음과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해서는 폭력까지도 불사하는 행동을 취하는 자들이었다. 1452년경, 이 그룹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해산되었으며, 남은 자들은 후에 새롭게 시작된 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에로 흡수되었다. 둘째 그룹은 로마가톨릭교회가 성찬에서 떡만 주고, 잔(포도주)을 주지 않는 일에 항거하여 ‘양 영성체(Utraquisten)파’로 불리는 그룹으로, 성찬의 떡과 잔은 동시에 분배하기를 주장하는 그룹이다. 이 그룹에 주로 고위 귀족들과 프라하 대학의 교수들, 그리고 도시민들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가톨릭교회의 유인술책에 의하여 끝내 로마가톨릭교회에로 흡수되고 만다. 셋째, 보헤미아형제연합파(Unitas fratrum)인데, 이 그룹은‘양 영성체파’가 가톨릭교회로 흡수되면서 이에 반발한 소수들이 중심이 되어 새롭게 1450년경에 시작된 그룹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룹은

사도시대의 초대교회 신앙을 따라 성경의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인 삶을 추구하였던 신앙적으로 매우 경건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복음의 진리에 매우 비타협적인 성격을 보이며, 경건한 신앙과 엄격한 신앙훈육방식 때문에‘양 영성체그룹’의 박해를 받기도 하였는데, 역시 이들은 성경대로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는 오히려 다른 후스파 추종자들과는 달리 진정한 후스 정신의 계승자들로 평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의 역사

1) 교회설립과 발전과정

후스의 교회개혁정신은 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Unitas fratrum)를 통해서 이어지게 되었는데, ‘형제연합교회’란 이름그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형제자매요, 또한 연합된 하나의

교회로 이해하였고, ‘형제연합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에 한 지체로서 지교회의 의미를 전제하였다. 이러한 교회는 페트르 본취츠키(P. von Chelcicky:1380-1452)란 한 사람 평신도의 영향에 의하여 사람들이 모이면서 시작되었는데, 그는 원래‘타보리텐파’에 속하여 있었으나, 그 그룹의 폭력불사론에 반대하여 교회개혁은 세상의 권력과 단절할 때 가능하다고 보고, 비폭력적인 입장을 고수하였던 인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사랑하며 복음의 평화정신을 강조하는 그에게 감동된 사람들이 주위에로 모여왔던 것이다. 그러나 형제연합교회를 창설한 주인공은 역시 본 취츠키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따랐던 그레고아 폰 프라그(Gegor von Prag:1474년 사망)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정신적 지도자였던 본 취츠키의 신앙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특히 성경을 신앙생활의 유일한 법칙으로 삼았고 특히 신약성경에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매우 중히 여겼다. 성만찬의 가르침에 있어서도, 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을 거절하고, 주님의 만찬에 함께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성경적 관점을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하였다. 이점은 루터의 공재설보다 칼빈의 성만찬 이해에 일치하는 점으로 이해된다.

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는 1464년에 독자적인 교회법을 마련하기 위하여 총회를 개최하였고, 이때 믿음에 의한 칭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 교회훈육 등을 교회의 신앙생활의 토대로 삼았다.

(다음호에 계속)

정일웅 박사  www.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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