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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연구/박현식 목사 논문에서 발췌 (13)남한에서 반공과 북한선교
박현식 목사(목감교회 / 본지 감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서기1978년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전주성결교회에서 제31회 정기총회가 개최된 가운데 소련의 전투기의 발사로 대한한공기가 추락한 사건이 발생하여 정부의 삼엄한 감시로 산업선교가 왜곡되기 시작하였고, 한국기독교가 가혹한 고난을 받게 되자 한국교회협의회 소속 6개교단장은 정부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공사주의자들에 의해 가혹한 고난을 당하였으나 마침내 우리교회는 승리하였다.


이러한 승리는 순교와 옥고 그리고 납북 등 신앙으로 지킨 내 나라에서 또 한 번의 순교정신으로 북한선교에 임할 것을 선포하고 더욱 통일에 걸 맞는 선교전략과 치밀한 계획을 수립할 것을 천명하였다.


이 시기에는 진보와 보수의 양진영이 공유하는 부분으로 분단의 비극을 남한만의 비극으로 여기고 북한을 가해자로 여기던 역사인식을 극복하고 분단은 남북한이 공히 비극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하나님복음을 선교하는 차원에서 인식하고 진보와 보수가 모처럼 공통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진보진영은 통일운동을 구축해가고 보수진영은 민족복음화운동을 구축하면서 반공에 대한 의식을 철저히 공유하고 있었다. 한국성결교회의 역사는 수난의 연속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선 불굴의 사신으로 1907년 선교초기에 설립하여 1921년까지는 복음전도 관으로 교회조직도 없이 순수 성서학원으로 신학생 육성에만 전념하다시피 주력했다. 그 후 10여 년 동안은 한국성결교단이 급성장하다가 1930년대에는 일제탄압으로 시달렸으며, 1943년에 교단이 강제해산 되었고, 1950년 6.25사변으로 많은 교회들이 파괴되면서 교회의 주요지도자들은 강제로 납북됨으로서 잠시 교단성장이 둔화되었다.


1950년경 교회 안에서는 NCC이념 분쟁으로 분열의 아픔을 겪게 되고 1965년 1차 화해와 합동을 하였고, 1974년 2차 합동으로 교단의 안정을 기했으며, 1978년에서야 비로서 통일국가에 대한 논의와 북한선교의 전략 그리고 계획이 필요한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북한선교와 기독교통일운동의 두 가지 노선으로 통일운동의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민족통일문제를 선교 적 차원에서 이슈화 하므로 인하여 갈등이 있기는 했으나 교세확장과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문화를 효과적으로 확장했다. [다음호계속]

임은주  im@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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