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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연구 / 박현식 목사 논문(11)6.25 한국전쟁과 북한교회들의 복원시급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8.07.05 18:15
  • 호수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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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북한에는 공산주의 물결이 팽배해지자 기독교인들의 무조건 남하를 시작하였고 기독교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1952년 4월 9일부터 13일까지 대구 봉산교회에서 제7회 기독교대한 성결교회 총회가 열렸는데 북한의 서부와 북부지방 회보 고서가 제출되지 않아서 지방회 자체가 살아지게 되었다. 

1953년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부산 수정동교회에서 제8회 총회가 개회 되고 개회선언을 한 총회장은 개회선언문에서 전란 중에 3번째 총회를 맞이하여 폭탄 세례 중에 인명이 살상되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여주셨고 예배당도 증가하게 되었다. 

우리 기독교대한 성결교회가 6.25전쟁 후에 산적한 문제를 아직 복원하지 못했다. 휴전 이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증오심과 공산치하에 있는 동포애라는 역사인식이 이미 남한 사회에 형성된 반공의식과 결부되면서 한국교회를 주도하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1953년 7월 29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정부는 환도를 서둘렀으나 이미 기독교 안에는 반공의식과 함께 반공과 멸공에 대한 운동이 시작되었고, 갈등의 골이 깊어 3년 동안의 길고 긴 세월 동안의 피난생활에 지친 교인들은 하나 둘씩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고 교단 총회와 신학교 다 서울로 환도하게 되었다. 

1954년 4월 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신학교 강당에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9회 총회가 환도 기념 총회로 개최되고 개회선언문에는 전란을 당하여 수도를 빼앗기고 부산에서 3년간 와신상담의 생활을 보내면서 총회를 3번이나 피난지에서 거듭하다가 이제 수도 서울로 복귀하였다.

3천리 금수강산에는 포성이 끊겼으나 오히려 전운은 사라지지 않았고 또한 멀리 북방을 바라보니 철의 장막 속에서 고통당하는 성도들과 겨레들은 남천을 바라보고 구원의 손길을 고대하고 있지 않은가? 십자군 전도대를 선봉으로 38선을 뚫고 북한으로 진격하여 교회를 회복하며 동포를 구출하기를 기약할 것을 다짐한다라고 기록했다. 

이와 같이 지난날을 생각하며 민주주의 인식과 수호는 물론 북한선교를 위해 좌파니 우파니 하면서 편가르기 논쟁에 휘말리지 말고 무조건 북한은 복음으로 교회 복원이 첫 번째 과제로 인식하고 평화 개념으로 한국교회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추진할 때라고 여기며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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