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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회봉사회 통한 소외계층 돕기 앞장 서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설립 목표 가져

인터뷰/ 한국기독교사회봉사 사무총장 이승열 목사

일시: 2017년 3월

장소: 한국기독교회관

대담: 양진우 편집국장

기사: 김광연 신학부 기자

이승열 목사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사군 출신의 목사, 어머니는 초대교회의 평양신학교 2회 졸업생 장관성 목사의 외손녀딸로 태어났다. 친가 할아버지는 선천에 기독교의 활발한 곳에서 터전을 일구었고, 어머니는 한국역사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로 집안, 영락교회 설립한 최초의 27인 장로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13살부터 살림을 맡아서 하면서 목회자의 아내가 되고 싶었다. 농사꾼을 만나 아버지를 목사를 만든 어머니였다. 이런 기독교적 배경에서 목회자의 소명이 시작되어 이 목사는 현재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사무총장으로 재직중에 있다.

Q. 목회 길을 걷게 된 배경과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를 맡은 소명을 설명해 달라.

A. 옛날에는 담임목사 1인 교회체제가 아니어서 집사들이 성경공부와 설교를 하던 시절, 교회지도자였다. 집사로 잘 섬기기 위한 교회생활에서 소명을 받아 중국의 선양(심양)에서 신학공부를 했다.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고 나서 박윤선 박사가 만든 신학교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1948년 월남하고, 지금의 심양 인근에서 목회하시다가 동북 삼성의 목회자들이 목회하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이 혁명을 일으키면서 모태통 군대가 목회자들을 죽일 때, 미국에서는 목회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비행기를 보내어 목회자 가정을 살렸다. 이후, 46년을 목회 하던 가운데 6남매가 태어나 교수, 목회자, 교회 지도자, 오르간 연주자들로 자라났다.

숭실대 철학과 졸업을 하고 ROTC 훈련을 받고 나서 전역했다. 이삼열 교수도 ROTC 1기였고, 공군장교가 되었다. 큰 형님은 공군본부, 둘째 형님은 육군본부에서 일했는데, 본인(이승렬 목사)은 산골짝에서 소대장으로 있으면서 목회생활을 위한 리더십 훈련을 받았다.

1979년 전역 후, 1212사태를 경험하면서 장신대 입학했다. 1985년 안수를 받고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들은 신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전공 없이 신학의 전문성이 부족한 부분을 영적 권위주의로 극복하려는 것들을 목격했다. 교회 안에 민주적인 토론이나 합리적인 대화는 전무했고, 신학교 교수들은 외국에서 공부한 것들을 전했지만, 영적인 훈련의 부족으로 교회현장과 신학(교)의 연결성이 많이 부족했다.

이후, NCC 장학생이 되어 독일 유학길을 선택했다. 전공은 교회론을 공부하려고 했다. 한국교회의 문제들을 연구하기 위해 시도했다. 요즘도 예수교장로회의 많은 교회들이 칼빈주의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고전어와 어학 신학 공부를 하면서 디아코니아 개론 시간에 청강하면서, 디아코니아 매력에 빠져 일생에 큰 영향을 준 사회선교회의 지도자이자 선구자인 독일 뷔헤른 교수를 알게 되고, 그 분의 발제를 하면서 이 사람을 통해 디아코니아를 전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전공하려고 했다. 훌리히 렘바크 교수에게 소논문을 제출하는데,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학교를 옮겨야 하는 생각에 디아코니아 전공이 하이델베르그에서 디아코니아 최고의 과정 교수에게 수업을 받았다. 기독교사회복지를 3학기동안 공부하고 ‘한국교회 디아코니아의 역사’에 대해 박사논문을 썼다.

귀국 후, 목회와 교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겸임교수와 목회를 하면서 목회 현장은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공통적인 문제인 하나가 근본주의 신학’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장신대 한국일 교수와 ‘선교와 봉사’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데, 서로 독일에서 지도교수의 부심으로 인연으로 만났다.

한국교회는 ‘교회는 자선 기간이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게 교회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 대한 회개와 성찰이 없었다. 신학교육 과정 속에서 디아코니아 교육을 하지 않았고 훈련을 받지 않아서 문제가 비롯되었다. 독일에서는 누구든지 디아코니아 교육을 받는 것이 필수이다. 독일에서는 개론에서 디아코니아가 꼭 들어간다. (독일에서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전하는 사업으로 하고 있다.)

대치동 교회에서 목회를 6년이나 했는데, 전임 목회자는 근본주의적인 신앙으로 20년을 했던 곳을 이어 목회를 했다. 목회하면서 근본주의와 디아코니아의 차이점을 알게 경험했다.

디아코니아와 사회선교의 동일하거나 카테고리로 들어갈 수 도 있다. 디아코니아를 기본으로 사회선교사회 운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 구호사업, 지진, 태풍, 아이티 등의 모금을 하고 아이티에서 36억 4천4백만원 등의 모금 활동을 했다. 에큐메니컬에 빚진 자로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 곳까지 왔다)

 

Q. 현재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기독교사회봉사회(이하 기사봉)’의 역사에 대해 소개해 달라.

A. 1949년에 기독교세계봉사회가 미국 NCC 산하에 소속된 것으로 한국을 돕기 위해 지부가 설립되어 만들어졌다. 1941년에 선교사들이 일제 총족부에 의해 강제퇴거를 당했다. 1945년 해방이후,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신의주를 중심으로 목사들이 자체 치안대를 유지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사회민주당을 만들어 신의주 학생운동의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한경직 목사, 윤하영 목사의 체포 검거령이 떨어져 정당 유지도 못하고 어슬프게 정당 활동을 했다. 이후 도피하여 월남했다. 월남 이후, 윤하영 목사님은 미 군정에 고위 간부, 한경직 목사님은 북한의 박해받은 현황들을 살펴보고 피난민 목회를 시작했는데 미국 선교사들이 영어 잘하는 한경직 목사님과 연결되어 CWS(Christian World Service), 기독교세계봉사회를 결성하여 활동을 했다. 이후, 우리도(한국도) KCS(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KOREA CHRISTIAN SERVICE)를 만들었다. 기독교 세계 봉사회에서 NCC를 통해서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에 지원하고, 이어 NCC에서 이사회가 되고, NCC 회원 교단을 중심으로 함께 연합사업을 하게 됐다. 당시 회원들은 기독교 학교(미션스쿨)들도 다 회원이었다. 세브란스, 기독교대학들도 회원이었다. 기독교사회봉사회를 통해 물자를 받고 지원했다. NCC 회원(9개 교단 소속)이다. 국내외 제외 사업과 빈곤가정, 독고노인이나 청소년 등, 희귀질환, 소아암, 소외계층의 사각지대 사람들을 돕는 사업을 하고 있다.

올 해는 새 출발을 하는 해이다. 올해는 다른 법인 단체들처럼, 가장 대표적인 연합인 봉사기간이 법인 만드는 기회를 놓쳐서 기독교연합운동 일치 운동을 못해 아쉬웠다.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적 선도 하는 일에 소홀했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로 하나로 만들었다. 임원회를 폐기하고, 이사회 하나로 새로운 정관을 만들어, 새 정관에 의한 단일한 이사회 구조, 새 이사장과 새 사무총장을 뽑아 새롭게 출발하는 원년이다. 시급한 과제는 사단법인화 하는 것이다. 교회와 일반 성도들에게도 공신력을 높이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한 가지 포인트는 한국교회의 공통의 과제인 신학교육에서 디아코니아 과정을 교과과정으로 한 곳이 없다.

 

Q. 앞으로 한국 교회를 위한 사업 확장과 계획 및 다짐 그리고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아카데미’의 계획에 대해 설명해 달라.

A. 그 동안 북한에 대한 통일복지 비전이 없었는데, 통일과 연관된 통일 시대의 북한 사회 개발, 북한 복지에 힘써야 할 과제, 앞으로 대북통일 복지 사업 등을 활발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시국문제와 연관된 사회문제, 성명서도 발표하고, 디아코니아와 연관해서, 정의를 이루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 봉사 기관에서 사회적인 현안에 대한 부분, 정치, 사회현실 등의 문제를 앞장서서 하지는 않으나, 개인적인 소신에 의해서만 마음에 염두하고 있다. 또한 세월호 때,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작은 교회 목회자, 사회에 있는 현장 목회자들과 함께 교회개혁에 대해 토론도 하고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공부도 하고 있다. 현재 배제대학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개교회에서 설교하면서 동시에 제직 세미나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한국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한종사협), 11개 교단들이 모여 실질자들을 돕기 위해 일하고 있는데, 각 종단의 사회복지 실무자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다. 노숙자들을 돕고 서울시와 협약해서 특급호텔에서 나온 물품을 기증받아 저 소득층 빈곤가정에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다. 법인화 되지 못한 이유는 NCC의 관계로 인해, 미루었는데, 이제 법인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독립재산제로 나가서 NCC가 관여를 하지 않기에 법인을 미뤘다. 공신력을 회복시켜 믿을만한 사회봉사 기업으로 인정받으면 기부금을 받아서 기독교기관이 절실하다. 공인회계사를 통해 감사를 받고 투명하게 드러내고 사회사업을 하면 활성화 될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열심히 할 것이다. 앞으로 여러 사업 가운데, ‘에큐메니칼 디아코이아 아카데미’를 개설하고자 한다. 교단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디아코니아를 설치하려고 한다. 그리고 장애인을 돕고, 수화교육을 돕는 프로그램 등을 자체 내에서 교육시키는 교과과정을 만들 계획이다.

끝으로 디아코이아 목회 연구소를 만들어 신학적인 뒷받침을 하고, 디아코니아 서적 출판, 개교회 디아코니아 컨설팅, 상담 훈련 등을 만들고 싶다. 개척교회 등 어려운 교회는 자비량으로 돕고 싶다. 해외연수 프로그램 등 다양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김광연  angel@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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