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위에 가을이 깔려있다. 파란 하늘은 마음까지도 파랗게 물들인 것이 시원스럽다. 가을빛을 머금은 시원한 바람 역시 가슴을 깊이 파고든다. 긴긴 여름 뜨거운 햇빛을 받았던 거리의 나뭇잎은 시집가는 새색시의 붉은 볼처럼 붉게 물들었다. 걷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누가 그랬든가. 가을은 생각하는 계절이라고! 그런 계절에 갑자기 노인들이 생각난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한국인의 감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분노’라고 보도 한 적이 있었다. 분노는 자기 욕구의 실현을 부정 및 저지하는 것에 대한 저항의 결과로 생기는 감정이다. 그래서 누군가에 적개심을 갖게 하고 때로는 폭력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에 늘 마음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지갑이 마른 노인들이 외로움에 깊이 빠져 자신들에 대해 심한 갈등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들에게 TV를 보는 시간은 느는 반면 일 할 시간은 자꾸 줄어든다. 요즘 세상에 한국 노인들의 하루가 그렇다.
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 이기도 했지만 요식행위만 거치는 것일뿐 별다른 변화는 없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65세 이상 고령자는 하루 24시간 중 평균 3시간 48분을 TV시청으로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는 매년 증가되고 있다는 것이 통계청 관계자의 말이다.
노후에 수입이 줄고 소일거리가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TV를 보면서 여가를 보내는 현상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외로운 노인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전직 교수 출신인 A씨(68세)는 “간혹 전직 교수나 친구들을 만나보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집에 있게 되는데, 그 때마다 아내나 가족들 옆에 있고 싶어 그 곁에라도 있으면 빨리 들어가서 자라고 면박을 준다”며 또 외손녀들이 와도 애들이 ‘노인 냄새’ 싫어하니 애들을 앉거나 만지지 말라며 접촉조차하지 못하게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소외되는 기분으로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가족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 모처럼 자식이나 손녀, 손자가 찾아와도 인사를 한 후에는 노인들은 안중에도 없다. 손자들은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갖고 게임을 하면서 정신이 없고, 젊은 자식들 또한 스마트 폰에 매달려 있다.
2009년 한국에 도입 된 스마트폰은 그 어떤 문명의 이기(利器)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80% 가까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평균 보급률의 4배에 이르는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 또한 적지 않다. 도입 된지 6년에 불과하지만 가족들 간의 대화보다는 스마트폰과의 대화가 더욱 더 일상화가 되고 익숙해진 세상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의 중독은 결국 가족들 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이래저래 그래서 노인은 외로워지고 외로워지다 보니 분노를 느끼며 심지어는 자살을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노인 일자리 수는 한정적인데 고령인구가 급증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큰 문제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빈곤하다는 것이다. 지난 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23만7000명 가운데 30. 6%(37만9000)가 65세 이상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 생활수급자 중 고령자 비율이 처음으로 30%를 넘은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 복지 사각지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노인 빈곤’과 ‘자살’을 꼽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세 배 이상이 되는 48% 수준의 노인 빈곤 율이다. 그리고 55세가 넘으면서 급상승하는 자살 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역대 주역들이 나이가 들면서 생계는 물론 자식과 가족들에게 소외되면서 분노하고, 급기야는 자살을 택하기도 하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외로움 때문에, 생계 걱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오늘날 한국 노후의 현주소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 같은 비극적 현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도 자기들(정치권) 이권이 아닌 민생들의 문제라서 일까. 노후 빈곤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는 여야 모두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월 31일로 되어 있었던 사회적 기구의 시한에도 불구하고 여야 간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가 국민연금, 기초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3개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 빈곤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은 기존 제도들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국정화’ 문제로 서로를 헐뜯고 조상까지 들먹이며 언쟁을 하는 오늘 이 시간에도 거친 손으로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들이 낡은 손수레를 밀며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5천원을 벌기 힘들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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