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저녁이면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저녁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나와 아내와의 데이트이다. 작년부터 나는 서울신대에서 아내는 총신대에서 제 각각 만학의 공부를 시작했다.

 아내는 상담학을 공부한다. 나와 아내는 이른 아침 우리가 사는 강원도를 출발하여 서울의 각자의 대학으로 잠시 이별한다. 저녁이면 역곡역에서 제법 감격에 겨운 재회를 하고, 차를 몰고 강원도로 돌아간다.

 차안에서 이내 아내의 상담학 강의가 시작된다. 강의래야 그날 교수님께 배운 강의의 내용을 다시 재잘거리는 것이다. 그래도 초보강사의 강의가 제법 솔깃하게 들린다.

 과목이 상담학이다 보니 아내의 강의 내용에는 늘 ‘상처’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여보 이런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어서 이런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데.” “저런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저런 가슴 아픈 삶을 살고 있데.” 거의 이런 유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모든 사람이 상처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상처의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세상마저 마치 거대한 대기권을 둘러싼 상처 난 세상으로 보여진다. 사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갑자기 상처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생각난다. 바로 교회이다.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에 왜 그리 상처라는 말이 가장 흔한 말이 되었을까?

 왜 그리 교회에서 상처받았다는 신자들이 많을까?
“지난번 목사님 설교에 상처받았어요.”
“어느 신자가 어느 신자 때문에 상처받았데요.”

 교회에 너무 상처가 난무한다.

 이러다 보면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교회멍멍이 삼년이면 상처학 강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정신세계가 황폐하다는 증거다. 또 삶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증거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에 유난히 상처가 많다는 것은 신자들의 신앙의 기초가 뭔가 황폐하고 부실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날의 신자는 너무도 약하다. 성경에 나오는 신자상은 이런 약한 신자상이 아닌데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대량의 약한 신자를 배출하고 있다.

 약한 신자를 배출하는 이유는 교회가 지나치게 관계 중심적 교회로 자리매김한데 있는 듯하다. 관계중심적인 교회와 신자는 나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적 신자상은 오히려 ‘사명 중심적’이다. 그래서 사명 중심적 신자가 많았던 선배신자들이 주로 부른 찬송은 이런 찬송이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이 찬송을 부르면서 사명을 생각하며 선배 신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오늘의 신자들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찬양을 부르면 눈물을 흘린다. 좋은 찬양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속에 오늘의 신자의 나약성이 보인다.

 상처에 민감한 신자가 된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신자들의 이기주의적 성향이 아닐까? 내 상처만 아프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 내 고통만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주의, 내 문제만 문제라고 여기며 사는 이기주의, 바로 이런 나 중심적 이기주의적 삶이 상처의 교회, 상처의 신자를 대량 양산하였다.

 신자라면 내 상처를 말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보아야할 상처가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볼 상처이다. 바로 하나님의 상처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놨더니 죄의 나락으로 떨어진 자녀를 보듬어야 하는 하나님의 상처를,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그 삶의 모습은 의붓아버지(세상)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는 모습을 지켜보셔야 하는 하나님의 상처를, 그래도 이 자녀 살려보겠다고 당신의 아들마저 내어 주었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자녀들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이 깊은 상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아들 예수의 상처는 또 얼마나 큰 상처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처녀의 몸 안에서 인간의 씨가 되어야 했던 상처, 어엿한 침대가 아니라 가장 초라한 마구간 구유에 눕혀야 했던 상처, 부잣집은 고사하고 가장 가난하고 초라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야 했던 상처,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이 한 순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외침을 들어야 했던 상처,

 사랑하는 제자에게 은 30에 팔리고, 더 사랑했던 제자에게 3번이나 부인당하고, 나머지 제자들이 뿔뿔이 떠나감을 지켜보아야 했던 배신의 상처,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며 하나님에게마저 버림받아야 했던 상처.

 사순절기간이다.

 적어도 사순절은 우리의 이기주의적 상처이야기는 이젠 침묵해야 한다. 대신에 하나님의 상처와 예수님의 상처를 더 생각하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한 신자에게 받은 작은 말상처가 생각났지만 이제와 보니 별거 아닌 것 같다. 그 상처 꼬깃꼬깃 꾸겨 휴지통에 쑤셔 넣어 버렸다.

 마침 이곳 오대산 기슭엔 때늦은 봄날임에도 흰 눈이 제법 수북이 쌓이고 있다.

 봄 가뭄에 찌든 대지를 하얗게 덮어버리고 있다. 이 흰 눈에 우리의 모든 상처마저 덮여버렸으면 좋겠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