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라는 말이 있다. 그대로 직역하면 ‘좋은 것을 가까이 취한다’ 라는 의미인데 ‘남의 것이라도 좋은 것을 발견하면 이를 곧 수용하거나 그냥 따른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 이이토코토리 정신에 입각해 외국선진문물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우리가 조선시대에 강경한 쇄국정책을 펴고 있는 동안 서양의 문물을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과학, 기술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근대화에 성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하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라도 탐욕스럽게 흡수한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탐구심과 학습욕으로 가득 차 있으며, 보고 배운 것은 반드시 기록에 남기는 습성이 있다. 삼국 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로부터 전해진 학문이나 기술, 고려시대의 도자기 기술 등이 일본의 문화를 꽃 피우게 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일본의 스승이었다는 자부심을 은근히 밑바닥에 깔고 있으며, 마음속으로부터 일본을 무시하고 싶은 욕심이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반대로 새로운 지식에 관해서는 자존심이 없는 듯 보인다. 조선에 15년이나 억류되었던 네덜란드 하멜 일행을 받아들인 후 일본은 그들을 환대함으로서 이들의 기술과 지식 뿐 아니라 문화까지도 적극적으로 흡수하였던 것이다. 16명의 네덜란드인이 15년간 조선에 체류하는 동안, 이들로부터 네덜란드어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려 했던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우리들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외교관 출신의 요시다 수상은 ‘일본인은 외국 문명에 심취하는 자질이 있는 모방자’라고 일본인의 특징을 스스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모방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연구와 개발의 축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선한 지적 호기심과 유연한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심도 있는 모방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창조 또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일본에 살고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인 김치가 일본어인 ‘기무치(キムチ)’로 명명된다는 것이었다. 한국 김치의 우수성과 효능에 착안한 일본인들이 이를 모방한 기무치로 국제 상표 등록을 하려 하였다. 결국 우리나라 학자들의 강력한 대응으로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우리의 것이라도 잘 지키고 이를 홍보하지 않으면 남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어설픈 모방은 ‘표절’이 되지만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한 모방과 이를 통한 재창조는 ‘리메이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일본 도쿄공업대학의 ‘오스미 요시노리’ 명예교수가 일본에서 22번째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40년간 효모 연구로 한 우물만 파 왔던 것과, 정부의 전폭적인 연구 지원체제, 실적보다 개인의 가능성과 창의성을 인정하는 연구 풍토가 그 밑거름이었다고 생각된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는 괜한 아집을 버리고 겸손해야 하며, 기존의 지식을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기초과학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연구풍토로 변화될 때 우리나라에도 노벨상 수상이라는 값진 결실이 맺어질 것이다.    이운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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