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차량은 이미 차주(남편)가 외부에서 사고를 낸 상태였다. 수모를 당 한 것이 억울하고 분했지만 ‘을’인 자신이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긴 한 숨을 내쉰다. 경비원들은 ‘갑’인 입주민에게는 한 인격체가 아닌 노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경비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초소에 입주민이 갖다 준 음식을 고맙게 생각하고 먹었는데 그 음식이 먹다가 남긴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뭇한 곰팡이가 핀 음식을 먹으라고 갖다 놓고 가는 입주민에 비하면 이런 정도는 약과라고 말한다. 그 경비원은 “아마 우리를 개, 돼지 취급하는 것 같다”며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경비원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귀띔한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아파트 입주자들은 경비원들을 보는 시각이 달랐다. 한 입주민은 “경비원들이 하는 게 뭐가 있어요? 제일 편한 것 같아요. 저녁때 보면 대부분이 사람이 오는지 나가는지도 모르고 잠만 자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월급은 또 올려 달래요”라고 푸념한다. 이는 정말 경비원을 몰라도 한창 모르는 입주민이다. 물론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경우, 그들의 실상을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알고 보면 아파트 경비원들의 근무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특히 일부 입주민들의 비인간적 처우와 언어폭력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파트 경비원은 아파트 단지의 제일 하층민이다. 온갖 잡일을 다하면서도 제대로 인사는커녕 무시를 받는 게 다반사다.
전직 교장 출신인 한 경비원은 “나이와 상관없이 딸 같은 나이의 젊은 주부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하대를 하거나 무시하기 일쑤다. 그럴 땐 화를 내고도 싶지만 그럴 경우 잘잘못을 떠나 불이익을 받는 건 경비원이기 때문에 참을 인(認) 자를 마음에 새기는 방법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 꼴을 참지 못하면 결국 경비원을 그만 두는 것뿐이다”고 토로했다.
최근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B 아파트 경비원 L모씨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동안 그림자로 있던 경비원들의 열악한 처우가 수면위로 뜨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L씨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인화물질을 자신의 몸에 뿌린 뒤 불을 붙여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아 왔지만 안타깝게 패혈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민주노총은 이 사건이 터진 이후 기자회견을 자처하고 “일부 입주민의 일상적인 인격무시, 폭언 등이 누적된 게 이번 사건의 주원인이다”며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폭행, 폭언을 당해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경비원들의 현 상황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같은 동 경비원에 따르면 L씨는 일부 아파트 입주민으로부터 괴롭힘을 많이 당했었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어느 입주민은 아파트 5층에서 먹던 떡이나 과일을 창 아래로 던지면서 받아먹으라는 등 모멸감을 심하게 느끼게 했다. 죽은 사람은 그렇다고 해도 화상 치료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산재 보험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남은 가족들이 진료비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며 고통스러운 동료의 일을 걱정했다.
“의인의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언12: 19>
이는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단순 직종으로 분류되는 아파트 경비원은 근로기준법 적용의 예외를 규정한 이 법 63조에 의거해 근로시간, 휴게시간 등의 적용을 사실상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 40시간인 법정근로 시간의 적용대상도 아니다.
임금 역시 올해까지 최저 임금의 90%만 줘도 된다. 현행 최저임금인 5210원에서 10분의 1을 제외한 4689원이 경비원들의 기본 시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휴식시간은 무급으로 처리된다.
경비원들의 업무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경비 초소 앞에 입주자 차라도 서면 나가서 차 문을 열어 주는 서비스를 하는 경비원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짜증을 내는 등 비상식적인 입주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밖에도 경비근무 외에도 분리수거, 택배 보관 관리, 주차 관리, 민원처리, 화단 제초 작업 등을 해야 한다. 식사도 휴식도 한 평도 안 되는 경비초소 안에서 이루어진다. 업무와 휴식이 좁은 방 공간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사실상 24시간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소리다. 일간지 국장으로 있다 퇴직 후 경비 일을 보고 있는 신문사 선배는 “경비원이 아파트 경비만 한다는 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업무시간에 휴식 시간이 포함돼 있다고 말하는 데 한 평짜리 공간에서 다리마져 제대로 못 펴는 것을 휴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대다수의 경비원들은 일보다 입주자 눈치를 보며 젊은 주부들을 상대하는 게 더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난 해 국가인권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10명 중 3명(35.1%)은 입주민들로부터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전문가는 “이들이 받는 정신적, 언어적 폭력은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심지어 정신질환으로까지 이어 질 수 있다”며 “이를 지속적으로 당할 경우 불안장애, 우울증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분신자살한 L씨의 경우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 6월 창원에서도 아파트 경비원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도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폭행을 당하고 보니 머리가 아파 도저히 살수가 없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 앞으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세요”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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