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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추모의 아쉬움양진우 기자의 이슈추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1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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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의 긴 행렬은 가톨릭 신자들의 관습 반영
개신교는 성직자 개념과 성자 숭배 사상 거부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 12분께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 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 추모 행렬은 40만에 육박했다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했고, 텔레비전 뉴스에서 헤드라인 뉴스로 장시간 다뤘다. 중세로마가톨릭교회의 잔재 유산으로 성지순례·성자 숭배 사상식 장례로 바라 보았기에 그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줄을 서 참배했던 것이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 22일 논평을 내고“성직자의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언론회의 표현은 개신교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개신교는 중세 로마가톨릭의 범죄에 대해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성직자 개념과 성자 숭배 사상을 부인하고 성경 중심으로 돌아 왔기 때문이다. 한 가톨릭 신자는 텔레비전 뉴스 인터뷰에서“추기경님은 가난하고 병든 자를 찾아가 돌봐주셨다”고 말했는데, 이는 전국 개신교 목회자들이 늘 하는 심방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왜 다를까?

 문제는 성직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카톨릭 신자의 자세와 목회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개신교 신자의 자세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종교개혁자들의 기초는 △ 오직 성경 △ 오직 그리스도 △ 오직 은혜 △ 오직 믿음 △ 오직 성령이었다. 이러한 사상 때문에 한 인물을 성스럽게 보지 않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에 입각해서 섬기는 자세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성직자’라고 하지 않고‘목회자’라고 지칭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한 목회자는“강호순 사건, 김수환 추기경 서거로 이어지는 특종들에 묻혀서 무려 6명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철거민참사 사건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김수환 추기경이나 철거민 한 사람이나 똑같이 보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은 중세가톨릭교회와는 달리 보편적 존경을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1965년 11월 19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Vatican Council)의『신앙의 자유 선언안』을 중심으로 사목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즉 중세로마가톨릭의 범죄를 회개하고 혁신한 가톨릭의 입장에서 사목 활동했기에 성직 계급적 관점보다는 민초들을 사랑하고 돌봐주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긍정적 측면과는 달리, 김수환 추기경 서거를 바라보는 개신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신학적, 목회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에 횃불이 당겨졌다. 이것은 본래의 교회 회복 운동이었다.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시대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전통이 권위를 장악했었다. 믿음보다는 선행을 강조했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평민과는 다른 고행을 더 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성경은“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전한다. 외형적이고 제도적인 것보다 예수를 믿는 신앙을 중시하고 있다. 반면에 중세 가톨릭은 성직 계급을 만들어 교황 왕국을 건설했다.

 중세가톨릭교회의 교권 타락과 신앙의 변질은 극에 달했다. 그 모습은 교황청의 사치, 도덕적 타락, 교회 감독·사제들의 방종·성직 매매, 신앙의 무속화, 즉 성자 숭배, 성지 순례, 세례명, 성물 숭배 등으로 나타났다.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성직 매매 사제들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성직 계급이 형성되어서 더 성스럽고 돋보이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감추어져 있었다.

 당시 중세교회의 타락상에 대해 루터는 1520년,「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쓴 서한」에서“추기경들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도적놈처럼 돈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 로마로 흘러가는 돈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교황청의 부패상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니 곧 성직매매, 술주정, 사기, 도적질, 강도질, 사치, 매춘, 협잡질 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가득 차 있다. 적그리스도가 다스렸다 해도 이보다 더 부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종교개혁자들이 집중적으로 저항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 내용을 보려면 95개조 반박문을 보면 된다. 그들이 집중했던 것은 성당을 크게 짓기 위해 돈을 밝히면서 팔았던‘면죄부’와 교권을 휘둘렀던‘교황권’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면죄부를 왜 팔았는가? 성 베드로 성당을 비롯하여 성당을 크게 짓기 위해서였다. 왜 교황권을 강화했는가? 교회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였다.

 95개조 반박문의 몇 내용은“△ 27항.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나온다고 말하는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 28항. 돈이 연보궤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동시에 성직자의 대도(代禱)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 43항.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증을 사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 45항. 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본체만체 지나쳐 버리고(요 3:17참조) 면죄를 위해서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점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 50항. 만일 교황이 면죄증 설교자들의 행상 행위를 안다면, 자기 양의 가죽과 살과 뼈로서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 79항. 교황의 문장(紋章)으로 장식된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 △ 86항. 또한 오늘날 부자의 재산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행하는 대신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은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95개 반박문을 붙인 루터는 1521년 4월 16일에 화형을 당할지 모를 재판장인 브롬스의회 법정에 서게 되었다. 많은 지지자들은 루터의 설교에 감동했다. 그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교황의 폭정과 타락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라는 거대한 신앙의 맥이 이어졌다. 카톨릭도 완만한 종교개혁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제21회 공의회)는 1962년 10월 11일에 개회되었고, 1965년 12월 폐막됐다. 회원 3,043명 중 2,540명과 이례적으로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에서 옵서버 6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사상 최대규모의 공의회로 치러졌다. 이때 과감한 교회제도·전례의식·교육·계시 등에 관한 재해석과 종교개혁을 실시해 교회에 변화가 일어나게 했다.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 등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과의 대화와 일치가 촉구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1962년부터 65년까지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독일 유학 중이었는데, 이 정신이 사목의 이정표가 됐다. 김 추기경은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에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라는 문구대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찾아 갔다.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교회헌장)>이 '하느님 백성'이 의미하는 바를 평신도로 국한시켰던 것에 비해 평신도, 성직자 모두를 포함하는 교회가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이라고 수정됐다. "우리가 교회다"라는 교회헌장의 선언은 그간 교회의 대상이었던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하는 획기적인 표현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중세로마가톨릭교회의 범죄상과는 달리 종교개혁적 입장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잔재 사상인 성자 숭배와 성지 순례식 참배 줄서기는 김 추기경과의 철학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고, 개신교 내부에서“우리에게는 이런 지도자가 없다”는 국적 불명의 신학없는 발언도 잘못된 것이다. 또한 용산철거민참사, 강호순 사건에 이은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기자 양진우
본지 기자
숭실大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숭실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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