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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직을 위한 근심희망으로 가득찬 세상을 향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0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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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언 46년 세월을 성결교회 교역자로 살면서 나름대로 충성을 다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그런지 걱정이 많고 서러움도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엄숙한 시간’이란 시 귀절에 이런 표현이 있어 가슴을파고든다.

/ 지금 세계의 어느 곳에서 / 누가 울고 있는데 / 이유도 없이 울고 있는 그이는 / 나를 울고 있는 것 입니다. /

 어느 집사님이 택시 업을 하면서 기사 10명을 모집했는데 그중에 6명이 목사였다고 한다. 이젠 더 이상 못해먹겠다는 징조인가 싶어 슬프다.

 이대로 가다가 내일의 한국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성결교회의 미래는 희망적인가? 노인 목사의 주책없는 걱정은 끝이 없다. 나의 근심을 몇 가지로 요약해보겠다.

 첫째로, 여성화 시대의 목사직 문제이다. 적어도 내가 자라던 시대에는 가난하고 힘겨운 세상살이를 살아도‘상처’라는 용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때라고 왜 크고 작은 상처들이 없었겠냐만 우린 그때 제법 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울면서 기도원 언덕에 소나무 뿌리를 빼겠다고 씨름을 할망정 우리 속에 언제부터인가 자리잡은 상처때문에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에는 웬 상처가 그리 많은지?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구세주가 아니라 우리의 크고 작은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치유하시는 치유자가 되고 있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는 점점 죄와 구원의 문제에서 멀어지고 그 중심이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아픔과 감동적인 치유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나는 그 이유를 이 시대 특징의 하나인 여성화 트렌드에서 찾는다. 지난날 우리는 강단에서 설교할 때 때로는 시대를 책망하고 길 잃은 세대를 향해 질타하기도로 했었다. 남자로서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강단의 야성(野性)을 찾아 볼 길이 없다. 그리운 옛 노래이다. 그리하여 목사들은 자신의 설교가 회중에게 잘 먹히기 위하여 유머집을 찾고, 재미있는 제스처로 청중을 웃기고 어디서 인간의 감성을 달래줄 감동적 예화를 찾아낼까 바쁘다. 할 일이 너무 많다. 상처 받았다는 사람 위로하기 바쁘다.

 둘째로, 비효율적 교회제도이다. 나는 해마다 교단의 총회를 맞이하면 며칠간 그 많은 대의원들의 명예로운(?) 회의장에 가만히 앉아 있을 일이 끔찍하다. 이거야말로 시간 낭비 돈 낭비의 모범사례이다. 교단 총회의 초미의 관심은 부총회장 총회장 선거에 있다. 선거만 끝나면 대의원 절반은 자리를 비운다. 회의 진행은 불법 투성이고 발언은 목소리 큰 사람에 의해 압도된다. 예산 통과 시간에는 각 부서에서 올라온 사업이 재정이 허락하는 한 허락한다는 단서와 함께 모두 통과된다. 대부분의 사업안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삭감된다. 그도그럴 것이 대의원을 많이 보내려고 세례인수는 늘려보고 하고 총회비 지방회비를 적게 내려고 재정은 절반 이하로 줄여서 보고한다. 그럭저럭 회의를 끝내고 우리는 내년에 대한 아무런 희망의 줄 한끝도 못 붙잡고 각기 자기 교회로 돌아간다. 시대는 급격히 변하는데 우리는 수십년전의 제도를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지상에서 가장 비효율적 운영의 하나일 것이다.

 셋째로, 목사 지망생의 감소현상이 두렵다. 아직까지는 한국교회에 목사 후보생이 많다. 그러나 미국의 대 교단들의 고민이 지망생의 현저한 감소이다. 최근 정보에 의하면 일본의 홀리네스 교단에는 신학생 입학자가 없어서 동경성서 학원의 존속이 위태롭다고 한다. 목회자가 없어서 80노인이 되어도 은퇴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연합 감리교회는 교역자 부족으로 목사 한 사람이 농촌교회 3교회를 동시에 돌보아야 하는 현실이다.

 무슨 까닭인가? 목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고 그 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너무 각박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자가 자기의 인생을 걸고 승부하기엔 적합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초등학교 선생님의 남자가 줄더니 이젠 거의 없어진 것과 같다.

 유명한 미국의 신학교 M.div과정에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다고 한다. 아마도 교회의 강단도 머지않아 여성 목사가 거의 다 차지할 공산이 크다. 아직은 이 나라 신학교에 남자 지망생이있고 대형 교회들이 건재하여 실감나지 않으리라.

 사실 남성들은 유치할 정도로 명예욕이 있다. 그래서 대학교, 신대원을 나오고 박사 학위를 한다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교회현장에서 얼마나 무용지물인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현장은 이성적 분석이나 정확한 말씀 해석보다 인간의 감성을 기술적으로 터치하여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요구한다. 교회 현장이 요구하는 목사가 될 자신이 없어서 외로운 목사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지금 한국교회의 강단에서‘살아있는 목사의 남성적 영성’이 죽어가고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 30) 목사직을 존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목사 송기식
수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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