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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동네 이득을 위해서‘하나님 이름’이용양진우 기자의 이슈추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0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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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은 비성경적
한국교회‘이스라엘 성지순례’표현 중지


 미국 공화당 부시 대통령의 임기 종료 1주를 앞둔 시점과 동시에 미국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 취임을 1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이스라엘은 무엇에 쫓기기나 한듯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해 맹폭을 가하고 있다. 엄청난 사람이 죽고, 부상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그 무기를 보니 우리 한국교회가‘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대대적으로 하면서 엄청난 외화를 벌어 준 돈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독일의 신학자 한스 큉은“지구촌 윤리”(Welt Ethos, global ethic)를 제창하였다. 이것은 온 인류가 함께 살아남는 윤리이다. 모든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도덕적 표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동적인 표준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단계에 왔다. 성경은 지구촌 윤리를 인류 생존의 윤리로서 제시하고 있다. 이 땅을 관리해야 할 교회가 세상을 향해 폭력의 사탄성에 대응하는 평화의 영성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과는 전혀 관계없는 폭력들, 그 중에서도 전쟁에 대하여 교회가 무기력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과 평화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강이 있다. 국가 간의 전쟁이 날 때 교회가 무언가 답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시오니즘’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저항을 제외하고는 평화를 실천하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가 전쟁을 거부하는 것이다. 상식이 있는 신자라면 전쟁이 매우 비윤리적이고 비논리적인 폭력 행동이라는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가‘정당한 전쟁’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다분히 군사력에 바탕을 둔 힘의 논리에 따라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 안에도 전쟁이 무수히 많다. 자기 패거리가 다 정당하다고 주장하며‘정당한 전쟁’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폭력 가운데 우시고, 평화 가운데 웃으신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지금도 일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에 전쟁과 폭력의 문제 해결 대안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찾을 때 가장 어려운 난관은 구약이다. 구약 성경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무력 사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도처에 명백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가? 아니다. 전쟁에 대하여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살인을 금하는 십계명이 그 증거이다. 5계명은 모든 살인의 금지이다. 하지만 정당한 전쟁론자들은 이 살인이 종교적인 살인을 의미하므로, 비종교적 영역에서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전쟁과 폭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구약에서 일부다처제가, 신약에서 노예 제도가 비판받지 않은 채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없듯이, 구약에 무력 사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곧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대립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신약에 나타난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 구약의 전쟁과 살인의 하나님이 대립된다면, 이는 마르시온주의에 다름 아니다.

 구약은 신약과 달리 전쟁과 폭력을 용인하는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 구약의 율법 중에서 의식적이고 제의적인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단번에 제사를 완성하여서 더 이상의 시행이 무의미해졌으나, 구약의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율법은 복음 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유효하다.

그러므로 전쟁을 명령한 형식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구약성경의 많은 전쟁이야기, 형벌, 복수의 기사는 그 사건 자체에 나타난 현상 자체를 보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에서 떠난 사탄이 이 세상과 하나님을 향해 벌인 전쟁에 하나님이 어떻게 응전하시면서 세상을 구원해 가시는가 하는 구속사인 것이다. 그리고 이 구속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신 이래 인간의 구원을 위한 성전은 이제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신약에서의 성전은 영적 성전이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전쟁은 국가와 국가가 싸우는 전쟁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사탄과 싸우는 전쟁이다. 이것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다.

 폭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합법화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타락한 사회 질서는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전쟁과 같은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한다. 폭력과 전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총칼을 들고 정의를 지키는 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힘의 우위를 가진 억압자의 침략 전쟁이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른 길이 아님을 가르치고 증거해야 한다.

기자 양진우
본지 기자
숭실大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숭실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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