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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우 기자의 교계전망대“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3.08.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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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교회 간 경쟁으로 ‘이명서’ 없이 수평 이동하는 세태
공교회성을 잃은 한국기독교 내 이단 침투 손쉬워 위기

본지 7면에 연재 되고 있는 김택규 목사(국제언론인포럼 편집위원)의 ‘교회 직분’에 관한 글이 인기리에 읽혀지고 있다.
그러면 왜 이토록 교회 직분에 관한 것이 화두가 되는 것일까?
그동안 개 교회들이 자신들의 울타리 안의 봉사자로만 인식되게끔 했고, 전 세계의 교회를 위한 봉사자로서의 위상을 세우지 못한 탓도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공교회성을 잃어버리고 개 교회들 간의 경쟁 상태로 돌입하면서 교인을 붙잡아 놓기 위한 수단으로 직분을 주거나 직분을 받은 이도 교회 내 권징이 없다 보니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다.
한 교회에서 물의를 일으키며 ‘이명서’ 한 장 없이 다른 교회로 옮겨도 타 교회 목사가 환영하며 받아 주는 세태를 보고 과연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교회의 정의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라는 개념이 모든 교파와 교단들의 공통된 정의이다.
또한 교회를 다면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천상의 교회, 즉 승리의 교회와 지상의 교회, 즉 전투적인 교회로 나눌 수 있고, 무형의 교회와 유형의 교회로 나눌 수도 있으며, 유기적인 교회와 제도적인 교회로 나눌 수 있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 나온 개혁교회는 무형교회를 강조한다. 특히 유기체적인 교회를 강조하며 동시에 제도적인 교회를 수용한다. 이는 직분이나 조직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유형교회를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교회당 건축 혹은 매입에 너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이는 다시 종교 개혁 전으로 돌아 가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김철원 목사(기성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은 지난 8월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교회당 건축을 하면서 융자를 얻은 후 이자 감당을 하지 못해 경매에 넘어 가는 서울지역 교회가 142개로 파악 됐고, 전국적으로 1천여개나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며 “이렇게 경매 넘어가는 교회 중에 많은 수가 하나님의 교회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서 무리하게 교회를 신축하지 못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신교회 탄생 전의 로마가톨릭교회

그러면 종교 개혁 전 1천년간의 중세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도적이고 조직적인 유형의 교회를 그 기초로 했다. 성직자들이 있어야 교회가 있다. 교황과 추기경 등의 제도를 중시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적이고 유기적인 교회, 특히 무형의 교회를 약화시킨 역사를 갖고 있다.
이들은 마태복음 16장 18절에 근거해 사도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고해 성사와 속죄권을 주장 했다.
그러나 교황은 원래 지방감독에 불과했다.
또한 성당 건축 헌금인 면죄부 판매에 대해 설명할 때, 테젤이란 자가 면죄부를 사면 어머니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뛰어 오른다는 주장을 했지만, 이 연옥설은 외경 마카비하 12장 44절부터 45절에서 끌어온 것인데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중세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교회를 건물 안에, 혹은 제도 안에 가두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한 생명을 위해 목회하는 무형의 교회 보다는 건축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회의 우주적 교회 개념보다는 중세적 교회관이 아직도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종교개혁 당시의 상황

이상과 같이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개혁가들이 진리를 향한 투쟁을 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당시 로마 카톨릭교회의 권위주의, 교회 권력의 남용 등을 폭로하며, 개혁을 외친 것이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그 성당 문 앞에 '95개 반박문'(Die 95 Thesen)을 붙였다. 이 글의 부제는 '면죄부의  효력에 대한 해명 위하여(Zur klaerung der kraft der Ablaesse)‘였다. 이러한 루터의  외침은 마침내 중세의 암흑을 깨뜨리고 복음의 회복과 인간성 회복을 향한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한국교회의 교의학적 문제점

현실적으로 일부 중대형교회의 경우,제도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치는 로마 가톨릭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회중교회 같은 개 교회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또한 신학적으로는 근본주의 및 세대주의적 분리주의의 양상을 띠고 있는 현실이다.
이뿐 아니라 교회의 표지(Nota Ecclesia)인 말씀과 성례, 그리고 권징 중에서 권징이 사라진지 오래다.
권징이란 “말씀을 바르게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준행한다. 그런데 오늘날 권징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말씀과 교회의 권위가 상대화된 것이다.
같은 지방회 혹은 노회 안에서도 권징을 받은 교인이 이동하면 수령적 이동을 통해 부흥하는 교회는 환영하면서 ‘이명서’를 받지 않는 것이 대다수 교회들의 모습이다.
그러다 보면, 신천지 추수꾼으로 의심되는 교인이 이동해도 속수 무책이다.

한국교회 개혁 해야 공교회성 살아나

이상과 같이 한국교회는 교파주의와 개 교회주의, 그리고 물량주의에 찌들어 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위해, 그리고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응답 할 수 있는 공동체의 새로운 양식으로서 "연합교회"(The Unitying Church)운동을 전개하자는 교회개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전망이자 세계 교회의 흐름이기도 하다.
그래야 공교회성이 살아 날 수 있다.
 
이제는 건축 보다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 펼쳐야

한국교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기독교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려면, 예수 운동 당시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는 부패했던 종교적 현실과 맞서 싸우며, 당시 죄인이라 불리웠던 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서 인간성을 소외시키며 인간 위에 종교적 제도를 두려 했던 위선적인 것들을 철저히 거부했다.
마가복음 11장 15절부터 18절에 보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성전을 부의 축적을 위한 장사터로 만들고, 당시 타락한 예배행위로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는 기사가 나온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성전을 이동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는 “너희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들었으므로 이런 성전은 헐어 버려야 한다”고 외쳤다. 따라서 예수는 교회개혁가, 예배개혁가의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건설업체처럼 되어 버린 한국교회를 2천년전 예수의 생명 운동으로 돌이켜야 한다.
돈 보다 생명을 귀히 여기며, 자본 축적을 축복으로 외치기 보다는 죽어가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생명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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