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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교지 소개 - 일본 박필현 선교사(1)“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0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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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다”

“The Living God is a Missionary God!” - John Stott -

 

일본인들, 기독교에대한 이해없어 어려워
고국 목회자들의 기도와 사랑이 큰도움

일본에 가장 늦게 들어온 새내기 선교사가 일본선교를 논한다는 것이, 앞서 수년간 고군분투하면서 승리의 사역을 일구어낸 여러 선배 선교사들 앞에서 여간 어색하고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로 3년간 저희가 좌충우돌 하면서 배운 개인의 경험과 현재의 사역을 중심으로 선교보고 형식을 취하게 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흔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표현 합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 1억 3천만명에 기독교신자 60여만명. 단지 1% 미만의 국민만이 크리스천인 ‘미전도 국가’. 더군다나 과거 36년간의 식민지시대를 경험한 우리들에게 일본은 선뜻 '이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나라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결교회는 1927년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한 윤낙영 전도사를 일본선교사로 파송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동경교회, 애지현교회, 풍교교회, 대판교회 등 지교회를 개척했고 그를 이어 박현명 전도사, 최익수 목사들이 일본인들의 무시와 경멸 속에서 순교의 각오로 일본선교의 베이스를 마련했다.
그런던 중 1943년 일본정부는 성결교단의 재림사상을 문제 삼아 해산명령을 내렸고, 해방 후 재일성결교회들은 재건에 총력을 다하였으나, 당시 일본내 한인교회들은 기독교에 대한 일본사회의 이해부족, 고물가에 따른 경제적 곤란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시 당면했던 어려움 중 가장 심각했던 것은, 자체 예배당을 소유하기 어려웠던 점과 교역자들의 빈번한 교체, 그리고 주변인들의 박해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곳 일본에서, 젊음과 일생을 불태우며 열성적으로 사역했던 초대 목사들의 한결같은 절규와 쓴웃음이 불과 70~80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과 목사들은 대개 살인적인 야찡(家賃:집세)과의 싸움을 다 겪고 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전세라는 개념이 없기에 월세로 없어지는 돈이 250만원에서 350만원을 웃돌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단적으로도 일본선교는 제 3세계 선교에 비해 민족적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가시적 열매와 성과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또한 선교 효율성면에서 일본에 선교사 한 가족 파송비용으로 다른 지역에 두 세 가정을 더 파송할 수 있다는 경제논리를 적용하여, 타 선교지에 비해 소극적 지원과 관심 밖에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일본선교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 정말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은 일본선교 후원이사회와 고국의 목회자들이 일본선교에 대해 마음을 열고 기도와 사랑으로 후원해주심으로 지금까지 최후의 관심지였던 일본이 이제는 제일의 관심지로 부각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제가 섬기고 있는 오사카교회와 사역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006년 3월 일본에 파송받아 동경기독교회로부터 정착에 도움을 받았으며, 청년 유학부 사역과 찬양사역으로 섬기면서 2년간 문화적응과 언어훈련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올해 2008년 3월 23일 부활주일을 기해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에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
습니다.
오사카성결교회는 지금의 건물은 아니지만 초기 한국성결교회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당시, 윤낙영전도사, 김태일전도사, 김경만 목사의 헌신적 노력으로 한때 138명까지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했던 부흥의 모체(母體)입니다.
또한 초기 한국성결교회 사부이신 이명직 목사, 이성봉 목사 등 많은 순회부흥사들이 부흥회를 인도하였을 때, 매일 밤 250명 이상씩 모이며 은혜를 사모하며 영적성장과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났던 부흥의 현장입니다.
또한 전임 교역자였던 김문철 목사와 사모가 10여년간 많은 고난과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며 눈물과 기도로 지켜오던 주님의 몸된 교회이기도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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