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들의 자문은 필요한 것일까?

“원로들을 존경하지만 자문까지 존경하지는 않는다”
 총회장 책임 회피 위해 원로 이용, 바람직하지 않아

공화정 로마를 지중해 세계의 패권국가로 만들어 준 사건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에 실패와 고통을 가져다주었던 약 1세기에 걸쳐 진행되었던 포에니전쟁이었다. 지속된 전쟁으로 군사 지휘관이 부족했던 로마가 임기응변식으로 사령관으로 발탁했던 약관 25세의 청년인 스키피오가 당치도 않게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격퇴하고 기원전 146년 마침내 전쟁에 종지부를 찍자,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쥐게 되었던 것이다. 한니발은 로마를 타도할 생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로마의 잠재능력을 이끌어내 준 셈이 돼 버렸다. 그러나 포에니전쟁의 승리이후 로마는 ‘새롭게 형성된 지중해의 패권국가’라는 자신의 현실에 잘 대응하지 못한 채, 다음과 같은 현상으로 약 1 세기 반에 걸친 기나긴 혼미의 터널에 돌입하게 된다.
첫째, 기나긴 전쟁기간 동안 원로원의 권위와 권력이 더욱 막강해진다. 기원전 509년에 시작된 공화정은 집정관, 원로원, 시민회 등 세 기관이 조화를 이루어 가능한 것이었다. 원로원은 왕정시대부터 ‘자문’기관이었으며 그 자체로는 결정권이나 어떠한 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니발이라는 신출몰귀하는 적을 만난 로마는 국가의 방위를 위해 평상시의 공화정으로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원로원에 모든 권한을 집중시키기로 하였다. 그러한 정책은 한니발을 물리치는 데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지만 그 결과 원로원에 권력이 집중되어 버린 것이다.
둘째, 기나긴 전쟁기간 동안 원로계급과 시민계급이 다함께 고통을 분담했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후 로마는 대규모 산업구조 개편이 진행되었는데, 귀족계급(원로계급)은 로마의 영토 확대와 전쟁 포로 등의 노동력 유입으로 대규모 농원을 설립하여 재미를 본 반면 이로 인해 시민계급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자작농은 몰락하고 실업률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셋째, 위의 이유들로 이제 공화정 로마 사회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어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더 가난해지는 사회 체계가 형성되었다. 이 빈부의 양극화가 결국 로마의 정치를 뒤흔들게 된 것이다. 원로원 계급(귀족)과 시민계급(평민)이 굳게 하나가 되어 한니발을 물리친 로마는 이제 빈부라는 양극화로 분열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 일어난다. 스키피오의 발탁으로 상징되는 능력주의를 요구하는 개혁파와 원로원의 과두정의 견지를 확신하는 보수파가 대립하게 된 것이다. 개혁파가 포에니전쟁의 승리는 스키피오의 지도력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능력주의를 요구하면, 원로원은 결국 그 스키피오의 승리도 원로원에게 집중되었던 총력태세의 시스템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원로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마의 보수파들은 구국의 영웅 스키피오에게 집중되는 국민들의 관심을 영 못마땅하게 여기며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스키피오를 재판정에 끌어내어 ‘로마의 정치를 개인의 소유물로 여긴다’며 탄핵하기로 한다. 이에 대해 스키피오는 그 따위 시시한 일로 재판받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며 스스로 정계를 은퇴하는 길을 택했고, 몇 년 후 이 영웅은 별장에서 쓸슬히 죽었다. 이리하여 일단은 보수파가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비록 로마의 원로원 계급이 ‘새로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계속 회피한다 하더라도 변화는 가차없이 닥쳐왔다.
물론 원로원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그에 대한 개혁을 취하지 않아도 당장 겉보기에는 나름대로 로마의 번영은 유지되고 있었다. 더구나 원로원에는 강렬한 자부심이 있었다. 성공체험에서 생긴 자부심은 때로는 인간의 눈을 흐리게 만든다. 한니발을 패배시켰다는 자신감에서 그리고 스키피오를 제거했다는 자신감에서 원로원은 ‘자신들의 판단에 문제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원로원의 자기 개혁은 기대할 수 조차 없었다. 내향적인 세계와 강렬한 자부심이 복합되면 거기에서 생기는 것은 현상유지적인 발상만 남는다. 이런 현상을 ‘동맥경화현상’ 이라고 한다.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공공심과 자기비판의 정신, 양쪽 모두가 없으면 개혁은 실행될 수 없다. 이 두 가지 모두를 기피할 때 남겨진 길은 현상유지 아니면 기껏해야 형식적인 개혁이 고작이다.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로마의 원로그룹은 공동체에 대한 공공심과 자기비판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공화정 로마의 현상유지가 가장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동맥경화현상에 빠진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애국심과 평민의 몰락을 걱정하는 정의감에 충만한 호민관이 나타났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였다. “로마의 승리를 위해 온 힘을 다했던 로마 시민이 왜 실업자의 처지로 떨어져야만 했나?” 라고 호소하며 30세의 티베리우스가 호민관으로 당선된 해는 기원전 133년, 제3차 포에니전쟁이 종결된 지 13년이 되던 해였다.
호민관 티베리우스의 개혁은 결코 과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건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동맥경화현상에 빠진 원로원 계급들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티베리우스에게 집중되는 열광적인 대중의 지지는 원로원에 대한 반역, 즉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원로원의 반 티베리우스파들은 자신의 종과 노예들까지 무기로 무장시켜서 티베리우스 지지자들을 공격하였다. 이 때 티베리우스와 그의 지지자들 300명이 참살당했다. 법적인 지배를 자랑으로 삼는 로마에서, 그것도 시내 한복판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난 것은 공화정이 시작된 이래 처음이었다. 기원전 133년 여름에 발생한 이 유혈참극은 이후 약 1세기에 걸쳐 이어지는 ‘로마의 내란’의 개막식이었다. “융화‘를 사랑하는 로마인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참혹한 시대는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무너뜨리고 초대 황제가 될 때까지 130여년간 계속되었다.
포에니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의 패권을 잡은 로마가 급격히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구시대의 사고방식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원로원의 동맥경화증이 자신들의 국가를 130여년에 걸친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우리 교단에는 원로 그룹중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총회장 자문위원회가 있다. 총회장 자문위원회는 주로 총회장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에 자문을 하는 기구라고 알려져 있다. 종교 단체의 특성상 대중들도 원로들의 자문이라는 점에서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그들의 말을 존중한다. 그리고 총회장은 원로들의 자문을 등에 업고 자신이 처해져 있는 어려움을 피해간다.
나는 원로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린 자문까지 존경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자문은 검증되어야 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내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목사가 된 지 22년 동안에 나는 총회장 자문위원들이 교단의 지도자들에게 기득권을 내려 놓으라는 자문을 내려준 적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도자들에게 우리의 스승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라는 자문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의 자문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권고(요한복음 18:14)처럼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을 강화시켜주는 법적 해석과 자문에 충실해 왔다.
위에 장황하게 열거한 역사의 한 페이지는, 원로집단이란 생리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고 기득권을 강화하는데 열중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위에서 열거한 로마의 역사에서 보듯이 원로들의 결정은 당장 현실의 어려움은 비껴 나가는 데는 효용이 있을지 몰라도 결국 그들의 결정은 자신들이 속한 집단, 국가 혹은 교단을 더욱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몰게 된다.
나는 앞으로도 총회장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비겁하게 원로들의 입을 빌어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실력으로 정면 돌파하기를 주문한다. 원로의 입을 빌어 위기를 모면하려는 생각은 비겁한 행동이며 자신의 직무에 대한 책임감 없는 행동이다. 총회장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원로들의 입에 따라 움직이면 결국 교단은 더욱 쇠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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