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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깨닫고 알지 못하면 십자가 능력 경험하지 못한다복음의 의미와 실천을 다양한 주제로 풀어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2.02.0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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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교위원회(국선위·위원장 이신웅 목사)는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일간 대전헬몬수양관에서 목회자 및 평신도 지도자 100여명을 초청해 복음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복음 컨퍼런스에서는 교단의 대표적인 ‘복음전문 강사’들이 참석해 복음의 의미와 더불어 복음을 주제로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를 시종 뜨거운 가운데 강의했다. 첫째 날과 둘째 날 참석한 100여명의 목회자 및 평신도 지도자들은 강사들의 열정적인 강의를 한순간이라도 놓칠 새라 매우 깊은 집중력으로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석하지 못한 전국의 성결가족들을 위해 이틀간 진행된 강의를 축약해 지상중계한다.<편집자 주>

복음과 성경
성경의 증언은 예수께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신약의 사복음서에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 종으로 오신 예수님,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참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반 이상을 기록한 사도바울도 우리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다시 오실 예수님만을 말씀하신다. 모든 성경은 온통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며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능력이며 지혜이며 하나님의 지식이며 모든 보화이다.
이 복음을 우리가 깨닫고 알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이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깊이 깨달아 이 어두움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동역자들이 되기를 원한다. 이 복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 따라 간구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고 가르쳐 주시기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성령으로 깊이 깨달아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이 메마르지 아니하고 땅 끝까지 전하는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한다.

복음과 기도
교단 내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본다. 일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복음에 대한 재각성과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복음과 기도’ 라는 주제 역시 복음이 거론되어지는 곳에 필히 부각되어야 할 주제이다. 필립 얀시가 말하였듯이 기도란 “하나님께 가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 이기에 복음과 함께 기도를 연계하여 생각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본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구원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류 혹은 교제이다. 또한 영혼의 호흡으로 영적 생명을 유지케 하는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복음과 기도의 관계는 첫째. 기도는 구원의 완성을 위해 절대 필요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다시 말해 나의 소원을 아뢰는 차원의 기도가 아니라 그의 뜻을 받아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조지아 하크니스는 “기도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개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구원을 현실 속에서 날마다 체험하게 하는 수단이다. 기도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한다.
기도의 삶과 기도하는 삶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하는 삶으로부터 발전하여 삶 자체가 기도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할 때에 복음의 목적이 완성된다.

복음과 성령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사중복음,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은 전도표제일 뿐 아니라 침체해 가는 한국교회의 영성을 새롭게 일으킬 중요한 핵심가치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에 모이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거듭났는가에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듭난 성도가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 성령의 은혜를 구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껄끄럽지 않길 원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랍니다. 성경 속에서 이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알지 못하고 설교했던 적이 너무나도 많았답니다.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기보다는 유명한 위인들의 이야기를 이 책 저 책에서 내 이야기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설교하던 마음은 괴로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발견한 건 성경이 어려운 책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더 기도하며 읽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를 불쌍히 여기셨나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성경의 말씀이 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임을 느끼기 시작했답니다. 사랑 때문에 울고 계시는 하나님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경 속에 따듯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강단에서 그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과 선교
선교란 복음 사역입니다. 복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고 헌신자가 되어집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서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미쇼데이 안에서 일하는 헌신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고, 광풍이 일어도, 감옥에 던져져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12년 선교사의 시간 동안 제 마음을 채웠던 사역의 자세는  “오늘 한 사람만 전도하자!” 였습니다. 부족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키 어려운 비천한 사람을 아마도 이 한 가지 마음 때문에 축복해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한 사람에게라도 예수님을 말하자.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꼭 이 마음만 가지고 살았다고는 장담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성취보다 이 마음 하나가 가슴을 채울 때 저는 가장 선교사다웠고 가장 행복한 사역자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취에 지나치게 연연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위한 마음에서 멀어지면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바쁘고 피곤하면서도 마음에는 정작 평화가 없었습니다. 남과 비교하게 되고, 나의 인생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선교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철저히 배웠습니다. 선교의 내용은 오직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한 사람들의 회심과 변화’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선교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복음과 십자가
 복음과 십자가, 복음컨퍼런스의 주제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즉, “복음”의 본질은 “진리”라고 본다.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그러나 복음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번복되지 않았다. 곧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약속은 이루어 졌으며, 이루어진다. 이것이 곧 복음이요, 진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란? “자유”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와 허물을, 죄의 상징인 십자가를 지심으로 또한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에게 참된 자유를 주셨다. 사도바울은 이에  로마서8장에서, 3가지 자유를 외치고 있다. 그 첫째는, 죄로부터 자유이다. 그리고 두 번째, 죽음으로부터 자유이다. 마지막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이다. 곧 십자가의 본질은 인류의 죄의 사슬에서 그리고 죽음의 형벌에서 법의 메임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복음과 재림

사람들은 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없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마지막 시대의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영적으로 마지막 종말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말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미지근함입니다. 그리고 병들었음입니다. 거기다 자신은 건강하고 잘되고 있다고 착각까지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열심을 내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는 의미는 정금 같은 믿음, 순수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 말씀 중심의 믿음으로 철저한 복음으로 고난과 체험을 경험한 믿음만이 살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흰 옷을 입으라는 의미는 십자가 보혈의 복음으로 재무장하라는 뜻입니다. 오직 죄로 더럽혀진 옷을 희게 빨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밖에 없습니다. 셋째 안약을 바르라는 의미는 세속화되고 세상의 부귀영화와 쾌락에 어두워진 영적인 눈을 뜨고,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종말은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 종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정말로 가까이 왔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고 성경의 말씀이 자연과 사회 역사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재림의 복음의 빛을 발하라’ 그리하여 이 땅 구석구석 무너진 데를 수축하며 무너진 성벽을 세우는 모는 성결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과 신유
복음은 질병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오산에서 목회 할 때입니다. 개척교회를 자립하는 교회가 되게 하느라고 10년을 혹사했습니다. 삯 월세 방에서 시작해서 땅을 구입하고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를 부흥시킨다고 밤낮으로 뛰다가 심신이 지친 가운데 뒤늦게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한다고 원거리를 통학 하다가 그만 병에 걸렸습니다.  35일 동안 병원에 다녔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몸은 점점 야위어 갔고 주일 설교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네가 목사냐 목사가 왜 병 고침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가.’라는 마음의 음성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보따리를 싸가지고 기도원으로 갔습니다.
기도원 집회에 참석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산에 올라가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산에 올라가 치유에 대한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강청의 기도를 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밤중에 산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누군가가 내 두 손을 꽉 붙드시며 ‘내가 너를 고쳤다’는 하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고 치유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너무도 기쁘고 감사해서 그 자리에서 뛰면서 감동의 눈물을 흐리며 감사의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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