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1.23 월 15:43
상단여백
HOME 논단 쓴물단물
감사 제사미국에 어려서부터 전신 불구로 50년 동안 누워 지낸 여인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구든지 그녀를 위로하려고 가면 오히려 위로를 받고 나온다. 그래서 이 부인의 소문이 미국 전역에 퍼졌다. 그녀가 50회 생일을 맞이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11.18 23:54
  • 호수 0
  • 댓글 0
 

미국에 어려서부터 전신 불구로 50년 동안 누워 지낸 여인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구든지 그녀를 위로하려고 가면 오히려 위로를 받고 나온다. 그래서 이 부인의 소문이 미국 전역에 퍼졌다. 그녀가 50회 생일을 맞이해서 많은 귀빈들과 대통령까지 축하하기 위해서 참석 했다. 그 때 그녀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병을 앓았기에 결혼도 못하고 병을 남편 삼아 오늘까지 50평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만일 병이 없어서 활동 했다면 저는 분명히 많은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서 있을 제 생활에 만족합니다”라고 말했다. 방문객들은 큰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인간의 속성은 남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두고두고 생각 하지만 남에게 은혜를 받고 도움을 받고 해택을 받을 때는 건망증 환자가 되어버린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촌에 들어가시니 10명의 나환자들이 멀리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소리쳤다. 예수께서 긍휼을 베풀어 치유하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명령했다. 이들은 제사장에게 가다가 치유함을 알았다. 그러나 10명중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 예수께 찾아와서 사례했다. 10명의 나환자는 죄인인 모든 인간을 상징하는 사람들이다. 한명의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받은 죄인과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모두 고침 받은 것은 선민인 이스라엘이나 바리세인과 같은 특별한 자들이 아니다.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되돌아와서 감사한 사마리아인에게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셨다. 이는 육신의 치유가 아니라 영혼의 치유가 참 구원이며 그것은 혈통과 종교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으로 얻는 것을 말해 준다. 10명의 나환자들에게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었다. 공동의 불행은 그들의 지역과 계급의 차별을 잃어버렸다. 생의 법칙의 한 본보기다. 복음서들 중에 아홉 명의 나병 환자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일이 없다. 그들은 절박한 상태에서 예수께 나와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였으나 병이 나은 한 사람 외에는 사례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흔히 부모님께 감사할 줄 모른다. 동물 중에서 인간처럼 장기간 부모의 양육을 받아야 생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에게 의존한 기간이 길다. 그러나 부모가 늙어서 자녀들에게 짐이 될 때 그 짐을 기쁘게 진 자녀들은 너무나 적다,

섹스피어의 ‘리어왕’이 불효한 자녀들을 가리켜서 감사 할 줄 모르는 자녀를 둔 것은 독사의 아빨 보다 더 날카롭다고 지적을 했다.  우리가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이웃에 해택이나 도움을 많이 받고 살면서도 이웃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 신세를 질 때는 평생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얼마 가지 못해서 망각해 버린다.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 중에서도 구속의 주를 보내 주셔서 예수를 통해서 구원 받았으니 그 은혜가 얼마나 지대한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수송아지나 염소의 제물을 원치 않으신다. 매일 매일의 양식이 필요치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감사 제사를 받기를 원하신다. (시50:14)  감사는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반응이다. 강물이 흘러든 것과 같다. 씨가 햇빛과 비를 맞아서 자람같이 우리의 감사도 경험 속에 자란다. 사도들은 고난 중에서도 감사했다. 독일에서 많이 부른 노래 중에 ‘이제 우리는 다 하나님께 감사하자’라는 것이 있다. 이 노래는 링크알트목사의 작사인데 전쟁 기근 염병으로 자기 교회 교인이 태반은 죽고 장래 식을 치르고 난 후에 지은 노래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방 종교인들보다 찬송을 많이 부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