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1.23 월 15:43
상단여백
HOME 논단 쓴물단물
고난이 주는 유익어느 나라 왕이 학자들에게 인류역사란 제목을 주면서 책을 써오라고 하였다.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들은 상당히 두꺼운 인류역사라는 책을 써 가지고 왔다. 그 책을 본 왕은 부피가 너무 많으니 좀 줄여 오라고 하였다. 학자들은 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11.05 02:46
  • 호수 0
  • 댓글 0
 

어느 나라 왕이 학자들에게 인류역사란 제목을 주면서 책을 써오라고 하였다.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들은 상당히 두꺼운 인류역사라는 책을 써 가지고 왔다. 그 책을 본 왕은 부피가 너무 많으니 좀 줄여 오라고 하였다. 학자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그 내용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래도 왕은 부피가 너무 많으니 더 줄여 오라고 하였다. 학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여러 날 골몰하여 세 번 네 번 수정하여 줄여 왔는데, 그 책 내용은 단 한 장에 단 한마디 ‘인류역사는 고난’이라고 하였다.

황제나방의 누에고치는 그 모양이 마치 플라스크처럼 생겼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방이 끊임없이 고치의 목 부분을 통해서 비집고 나가려고 심하게 몸부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곤충 학자들은 이 고통은 날개를 생기 있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며, 자연이 강제로 행사하는 일종의 생존법칙이라고 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다. 고난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보람과 행복은 언제나 고난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고난은 산자가 통과 하여야할 필수 과목이며, 이 것의 학점은 잔인하리만큼 인색하고 어깨 너머로 슬쩍 훔쳐 볼 수 있는 커닝 정도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난은 지나서 보면 아름답운 추억일 수가 있다.

고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현재의 행복도 모르고 사는 무가치한 사람이다. 청소년 때에는 가슴 설레어야 하고, 하얀 밤을 원망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숙명적 가난은 잘 살아 보자는 의지를 불태웠다. 박봉의 손을 내밀었던 가난은 살고 싶은 자가 걸어가야만 하는 가파른 언덕길 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절로 잊혀지고 다 지나가는 것, 이것이 세상일이 아니겠는가. 젊음과 꿈이 있었던 그 때 그 시간을 환불하고 역사의 시간을 돌릴 수는 없으나, 고통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지혜가 매사를 그르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 우리 민족이다. 도무지 죽은 자는 고통이 없다. 고통은 산 사람의 호흡이요 진동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고통스러워하고 절박한 현실의 벽 앞에 자문자답 하는 “왜” 라는 물음은 나를 좌절과 수령에서 탈출 하고자하는 산자의 아름다운 열변이다. 내 몸의 동작이 느슨해지지 않고 넘어져도 절대로 꺽일 수 없는 강철 같은 의지와 부드러운 마음은 평생을 두고서도 후회할 것 없는 최고의 가치요 밑천이다.

그렇다면 다 없어도 좋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는 동작이 있고 고통을 탈출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이런 고통은 언젠가 보람으로 환불 받을 수가 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서도 고난을 참을 수 있는 비결은 앞에 보이는 것을 위해서 어떤 고난도 참아 내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천국이 있고 주님이 계시니 고난을 참을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핍박과 고난이 끝이 아니다. 저편 그리스도의 영광이 있고 영생이 있다. 그 영광을 바라보고 어떤 고난도 극복 할 수가 있다. 병자가 치료할 때 아픈 수술도 참는 것은 수술 결과로 건강해진 자기 모습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고난이라기보다도 단련 “테스트”로 생각하면 견디기가 쉽다.

금이 순금이 되려면 용광로 속에서 단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닥치는 고난은 믿음의 시련이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1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다. 그 시련을 통해서 그 믿음은 전 보다 더 강해지고 분명해 진다.

이 세상의 번뇌와 고난은 우리 힘을 빼앗으려는 폭군이 아니다. 도리어 힘을 넣어주는 지원군이다. 우리 앞에 보인 목적 때문에 모든 고난과 시련은 우리 신앙을 깨끗케 하고 굳게 하기 때문에 그 날에 주께서 그 모든 충성된 종들에게 “잘 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겠기에 어떤 고난도 이길 수가 있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