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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복 의 가 치사라센제국의 압둘라만3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왕국을 49년간 통치했다. 또 그의 일 년 세입은 3억3천6만 달러였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였다. 아름다운 여자 3321명을 왕후로 삼았고 자녀가 616명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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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0.2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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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센제국의 압둘라만3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왕국을 49년간 통치했다. 또 그의 일 년 세입은 3억3천6만 달러였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였다. 아름다운 여자 3321명을 왕후로 삼았고 자녀가 616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내가 오래도록 영광스러운 통치를 하였으나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날은 14일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참된 행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 각자가 물어야 할 근원적인 물음이다. 현대의 성녀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고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지금 그분과 함께 천국에 있을 수 있는 그 능력 안에서 천국을 발견 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분과 함께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분과 함께 행복해 진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그 분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그분이 도우신 것처럼 돕고, 그분이 주신 것처럼 주고, 그분이 섬기신 것처럼 섬기고, 그분이 구한 것처럼 구하고, 24시간 그분과 함께 있으며 빈궁한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그분을 어루만지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단순공식을 가르쳐 주셨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만 발견 된다. 그 밖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실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리 하셨듯이 하나님의 뜻을 제일 먼저 찾는 사람들은 참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행복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과 욕구충족에는 언제나 대상이 있다. 사랑하고 싶은 본능에는 남녀가 있기 때문이요, 먹고 싶은 본능에는 음식이 있고, 영원히 살고 싶은 본능에는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복해지고 싶은 본능 때문에 그 대상은 너무나 다양 하다. 문제는 인간 모두 자기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음악이나 운동이나 그것은 다만 행복의 소재와 대상이 될 따름이다. 최선은 최고보다 아름답다. 1인자 같은 경쟁 심리는 인간을 더욱더 행복에서 멀어지게 할 수 도 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과 사이좋게 걸어가는 길동무 같다. 건축 현장에서 무거운 철근을 어깨에 메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행복의 땀방울을 훔치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먹고 자기를 계속 하면서 할 일 없이 하루해를 따분하게 보낸 백수건달도 있다. 깍두기와 된장찌개에 가족들이 모이고 나의 삶과 행복은 바로 너 때문이고 자신의 책임을 땀 속에서 완수하는 행복한 가정이 많다.

행복은 전파처럼 퍼져 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땀에서 쟁취하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러나 행복의 장애물은 언제나 과욕과 탐심일 수 있다. 자신의 분수를 모른다면 행복은 여전히 오리무중일 수도 있다. 행복은 암송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요, 유행가처럼 부른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육선이 집에 가득해도 다투는 가정이 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요 깨달음에 있다. 탕자가 자기 분깃을 가지고 집 떠나서 허랑 방탕한 이유가 무엇인가. 탕자는 아버지의 훈계와 책망이 듣기 싫었다. 아버지의 훈계는 잔소리요, 지나친 편견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권력과 소유 때문에 불행의 철장 신세를 지고, 어떤 이는 평생을 철장에서 백발을 휘날린다. 소유를 행복으로 고집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너 때문에 내가 행복하고 자기보다 우리라는 소유를 더욱더 귀하게 생각 한다. 외삼촌의 딸 라헬을 사랑했던 야곱은 7년이 7일 같았고 14년도 수일처럼 지나갔다고 했다. 하루를 살아도 천년이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이다. 그러면 누구를 사랑하든 대상은 자유다. 나 같으면 천지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고 싶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신 ‘나’가 아니고 ‘너’, ‘우리’, ‘모두’이고 싶다. 이유는 행복의 참 가치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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