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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본향새는 귀소성이 강하다. 둥지가 있는 땅, 추억이 많은 곳으로 돌아가려는 새의 마음은 마치 화살과 같다. 유럽에 사는 어떤 새는 자기의 둥지를 찾아서 거의 지구의 직경 정도의 거리를 날아간다고 한다. 연어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9.1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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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귀소성이 강하다. 둥지가 있는 땅, 추억이 많은 곳으로 돌아가려는 새의 마음은 마치 화살과 같다. 유럽에 사는 어떤 새는 자기의 둥지를 찾아서 거의 지구의 직경 정도의 거리를 날아간다고 한다. 연어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정확히 찾아 가 산란을 하고 생을 마친다. 이것은 모두 귀소본능 때문이다. 사람들도 명절 때가 되면 자기 고향을 찾아간다. 금년은 연휴가 어느 때보다 길기 때문에 수많은 귀성객들이 자기 고향을 찾아갈 것이다. 고향에 가면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가 있고 친구가 있다.

자라면서 맡았던 고향의 냄새가 골목골목 서려 있기 때문에 고향은 어머니 품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 땅에는 고향을 잃어버린 천 만 실향민이 있다. 명절이 되도 갈 수 없는 북녘고향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그립겠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우르였다. 그에게는 돌아갈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고 철저히 나그네 의식 속에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았다.

아브라함과 족장들은 평생을 유목민으로 살면서 정착생활을 해보지 못했다. 그들의 유랑생활은 계속 되었다. 그들은 외국인으로 살았다. 외국인은 케노이라고 하는데 낯 설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토착민의 멸시, 천대, 의심을 받으면서 외국인으로 살았다. 외국인을 토착민들은 야만인처럼 무시했다. 어떤 외국인이 자기 집에 보낸 편지에 “나는 외국인이기에 무시를 당했다. 집이 가난해도 내 집에 사는 것이 외국 땅에 사는 것 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족장들은 평생을 약속하신 땅에서 살았지만은 외국인으로 살다가 죽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불신자들에게는 외국인처럼 보일 것이다.

같은 지역이나 같은 집안에 살지만 생각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고, 가는 방향이 다르다. 그들이 볼 수 없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보고, 그들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그들이 애지중지 한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들이 울 때 웃을 수가 있고, 그들이 기뻐할 때 슬퍼하고, 그들이 웃을 때 울기 때문에 외국인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또 외국인이라는 말속에는 파로이케인의 뜻이 있는데 ‘우거한 자’라는 뜻이다. 남의 나라에 거류한 외국인이란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과 바벨론에서 파로이케인으로 살았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노예보다 못했다. 또 외국인을 파레피데모스라고도 하는데 ‘자기 주소를 다른 데 두고 임시로 외지에서 우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천국 본향에 본 주소를 두고 이 땅에서 거류민으로 살고 있다. 사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전세기한이 정해져 있다. 그 전세기한이 끝나면 체크아웃하고 떠나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운명은 나그네요 외국인이요 순례자이다. 교부 터틀리안은 “그가 땅에서는 순례의 길을 걸으나, 그의 위에는 하늘 고향이 있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은 “우리는 조국에서 추방된 나그네들이다”라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세상은 다리다. 지혜로운 자는 그 다리를 건너가고 그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하였다”고 한다.

족장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였다. 그 희망의 실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지 못하지만 그 빛은 벌써 그들의 눈에서 영롱이 빛났다. 가는 길이 얼마나 멀건 상관치 않고 그 길을 멈추지 않고 그들은 희망으로 살고 기대 속에 살다가 천국 본향으로 입성 했다.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의 하나는 좀 더 참지 못하고 조급히 돌아서 버리는 것이다. 좀 더 노력하고 좀 더 참고 바라면 그 꿈이 실현 될 것이다. 그들은 저편을 바라보고 힘차게 나갔다. 나그네 생활이 고달파도 저편에 무엇을 둔 사람이기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를 사랑하신다. 너무나 소심하고 안전한 생각만 하는 자는 하나님과 반대편에 있는 자이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미지의 곳으로 계속해 나가는 자는 마침내 더 나은 본향에 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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