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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통한 자유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를 해방시키기 전 뉴올리언스의 노예 시장에서 아름다운 흑인 혼혈 소녀가 경매에 붙여졌다. 경매자들은 평소처럼 입찰을 하다가 군중 속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계속 가격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8.1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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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를 해방시키기 전 뉴올리언스의 노예 시장에서 아름다운 흑인 혼혈 소녀가 경매에 붙여졌다. 경매자들은 평소처럼 입찰을 하다가 군중 속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계속 가격을 높이어서 불렀다. 경매는 그 사람이 1,450 달러에 소녀를 살 때 까지 계속 되었다.

그 사람은 북부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 소녀는 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다음날 아침 그 사람은 그 소녀 집을 찾아 갔다. 그 소녀는 슬픈 목소리로 “난 당신과 함께 갈 준비가 되었소”라고 말했다. 그 때 그 사람은 노예증서를 그 소녀에게 건네주면서 “아니다. 나는 너와 함께 가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너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왔단다. 이것이 너를 자유롭게 보장해줄 증서란다”라고 했다. 소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서 경매에서 샀다고요? 정말 자유의 몸입니까?” “물론 너는 자유인이다” 그러자 소녀는 “그렇다면 선생님 선생님을 위해서 평생을 섬길 수 있도록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드디어 소녀는 자유로운 봉사자가 되었다. 이처럼 진리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드신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주님께 일생을 소녀처럼 봉사해야 되겠다.

기독교의 신앙이 사람을 자유롭게 함은 그리스도께서 진리이기 때문이다. 거짓이 난무한 현대인에게 진리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거짓말과 반칙으로 세상은 진리의 흉년에 들었다. 하나님의 세계는 진리를 축으로 회전하기에 인간의 거짓과 위선을 오래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진리가 탐구되고 선언된 곳에만 참된 자유가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계의 진리를 찾아 사람들을 질병, 공포, 불필요한 노고로 부터 해방 시킨다.

 

교육자들은 지식의 진리로 무지에서 해방 시킨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자기 고향 나사렛에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사61:1-2)을 인용 하시면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려고 당신 자신이 오셨다’고 말씀 하셨다. 65년 전에 우리민족은 일제로부터 정치적인 해방은 받았으나 영적으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정한 자유는 정치적 육체적 자유가 아니라 영적 자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포로란 원수에게 사로 잡혀서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를 말한다. 먼저 죄의 포로 된 자가 있다. 음란, 도박, 도적질, 사기, 살인에 포로 된 자가 있다. 수많은 자들이 겉보기에는 자유인 같지만 죄악의 포로 된 자가 부지기수이다. 귀신의 포로 된 자, 알코올과 마약 도박 등 갖가지 죄악에 포로가 되어 이것들이 조종한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인간의 힘으로는 여기서 해방되기가 힘들다. 그러나 진리 되신 예수님께 돌아올 때 자유 함을 받을 수가 있다.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가 주님 앞에 와서 자유 함을 받았고, 수전노 삭개오가 예수님 만나서 참 자유인이 되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원하는 대로 한다. 한번 나쁜 습관에 매이게 되면 그 습관의 종이 된다.

죄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힘을 잃고 좋지 못한 줄 알면서도 그는 습관 방종 쾌락의 종이 된다. 진리만이 이것에서 해방 시킬 수가 있다. 인간의 어떤 노력도 고행도 국가 기관도 자유케 해 줄 수가 없다. 진리만이 세상의 자유와 평화와 안전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하나님의 도덕률에 위배되는 제국주의 자본주의 기타 모든 주의는 우리에게 자유를 줄 수 없다. 진리만이 자유요 하나님을 떠난 진리는 자유가 아니다. 기독교는 구속의 종교다. 기독교는 추상정인 관념의 종교가 아니다 진리 그 자체다. 그러기에 진리의 화신인 예수를 발견하기 전에는 아무도 자유함을 얻었다고 말 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이 소유한 산 진리는 예수님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복음서에 기록된 그의 언행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를 자유케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 우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면 우리도 이웃을 돌봐야한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면 우리도 의롭게 살아야 된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실행 해야만 자유가 올 것이다. 어거스틴은  “은혜를 주시고 원하는 대로 명령 하소서”라 말했고, 루터는 바울의 사상을 따라서 기독교인의 자유를 선언했다. “크리스천은 모든 것이 온전한 주인이요 아무에게도 예속 되지 않는다. 크리스천은 만인의 온전한 종이요 만인에게 예속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자유의 패러독스다.

약, 도박, 주색잡기가 그 예다. 그는 자기 죄를 미워 하기도하고 동시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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