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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선교사의 부룬디 선교편지 (12)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키룬디어는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 당시 키룬디어를 가르쳐주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다행히 고등학교에서 키룬디어와 영어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았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약속 시간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7.3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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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키룬디어를 제일 잘 하지 않느냐!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키룬디어는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 당시 키룬디어를 가르쳐주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다행히 고등학교에서 키룬디어와 영어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았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약속 시간을 자꾸 안 지키는 것이었다.

외국인에게 키룬디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서 많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결국 첫 번째 키룬디어 선생님은 말라리아에 걸려서 수업을 포기하게 되었다. 필자는 다른 대안을 찾다가, 외국인 선교사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는 영어로 된 키룬디어 교재를 수소문해서 구했고, 그 책을 가지고, 독학을 하면서 스텝들과 회화 실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키룬디어는 반투어 계열의 오래된 언어로 단어 하나에도 변화가 많았고, 발음도 한국어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발음들이 있었으며, 악센트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생기기도 했다. 마침내, 부룬디에 도착한 지 일 년이 지나가고, 약속한 키룬디어로 설교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현지인들과 약속한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언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데… 신참 선교사가 뭣도 모르고, 일 년 후에 키룬디어로 설교를 한다고 덜컥 약속만 하고, 이를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일단은 설교 원고를 영어로 작성하고, 스탭을 시켜서 그 원고를 키룬디어로 번역하도록 했다.

번역된 원고를 보니, 모르는 단어들과 발음이 어려워서 읽기 어려운 문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뿔싸! 일상 회화와 설교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스텝에게 키룬디어 설교원고를 읽도록 한 다음 그것을 녹음했다. 그리고 녹음된 설교원고를 반복해서 듣고 또 듣고, 읽기를 수도 없이 했다. 해도 해도 여전히 뭔가 어색하고, 과연 현지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약속의 그 날. 드디어 키룬디어로 설교하는 그 첫날이 왔다. 불안한 마음에 영어원고도 가지고 갔다. 정 자신이 없으면 통역 설교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약속은 약속인지라 결국 키룬디어로 설교하기로 했다. 설교시작! 인사말은 여러 번 한지라 유창하게 시작할 수 있었는데, 본론부터는 키룬디어 원고를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읽기도 어려웠다.

통역설교를 할 때는 통역하는 동안 생각도 하고, 다른 멘트를 준비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키룬디어로 설교를 하니 생각할 여유도 없어서 정신없이 설교를 했다. 말이 꼬이기도 하고, 발음이 안 되기도 하고. 기도까지 마무리 하고, 강대상을 내려오는데, 그 비참함… 키룬디어 설교 약속한 것을 후회하면서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현지인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키룬디어로 설교하는 선교사를 보았느냐? 왜 미셔너리 김이 어려운 키룬디어로 설교하는 줄 아느냐? 우리 부룬디언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그들은 필자의 부족하고 어눌한 키룬디어 설교 속에서 자신들을 사랑하는 필자의 마음을 읽었던 것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모두들 필자에게 와서 키룬디어로 설교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그리고 키룬디어를 너무 잘한다고 격려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지 리더들도 키룬디어하는 선교사가 자랑스러웠는지 지역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선교사는 키룬디어로 설교한다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칭찬이 민망했지만 키룬디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언어인지라 하루아침에 유창하게 되지는 않았고 낙담할 때도 많았다. 때론 실력이 정체된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 선교사야. 그래도 한국사람 중에서는 네가 키룬디어를 제일 잘 하지 않느냐!” 당시 부룬디에 사는 한국 사람은 필자 가정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한국사람 중에서 키룬디어를 제일 잘 하는 사람. 하나님은 그렇게 유머 있게 필자의 키룬디어를 격려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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