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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가르치라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상대성 원리를 정리한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아주 늦게 말을 배웠다. 4세까지도 부모는 저능아라고 믿고 있었다. 1학년 담임선생은 공부도 못하고 친구와 잘 어울리지도 못한 그에 대해서 “이 아이에게는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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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0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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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상대성 원리를 정리한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아주 늦게 말을 배웠다. 4세까지도 부모는 저능아라고 믿고 있었다. 1학년 담임선생은 공부도 못하고 친구와 잘 어울리지도 못한 그에 대해서 “이 아이에게는 아무런 지적 발달도 기대 할 수 없다”고 통지표에 썼다.

아인슈타인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일삼는 선생들로부터 바보란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그는 15세가 되었을 때 이미 뉴턴, 스피노자, 데카르트를 독파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강요를 받았다면 그의 재능이 꽃피울 수 있겠는가. 바른 교육은 남보다 뛰어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교육 하는 것이다.

교육은 한자로 ‘교육(敎育)’ 이고 영어로는 ‘education’이다. 한자의 뜻은 가르치고 기르란 의미이다. 갓 난 아이 때부터 다른 동물과 같이 내버려두면 도덕 지식 체격 등 사람으로 필요로 한 것을 지니기 어려우며 그것을 일찍부터 가르쳐주고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동양에서 교육이란 말이 처음으로 쓰여진 것은 맹자의 진심장 (盡心章) 중 득천하지영제이교육지(得天下之英才而敎育之)란 글에서 시작 된 것이다.

천하의 영특한 인제를 구해서 이를 가르치고 길러 장차 쓸모 있는 일꾼을 만들자는 데서부터 시작한 말이다. 그런데 교(敎)는 가르침을 뜻하지만 원래 모방 즉 흉내 내는 것을 뜻하였다. 사실 교육의 실체가 그 대부분에 있어서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 육(育)은 양육을 뜻하는 것으로 먹여서 몸을 보호하고 자라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영어의 e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변형된 말로서 ‘끌어낸다’의 뜻이다. 다시 말하면 타고난 속에 것을 밖으로 끌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발전시켜 준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사람의 선천적인 능력이 크게 인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기독교 교육은 어떤 교육인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교육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가 훌륭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교육 하였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빠지면 그 기독교 교육은 알맹이 없는 교육이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은 교육 (teaching) 전파 (preaching) 봉사(healing)였다. 3대 사역 중에서 먼저, 가르치는 사역을 예수님께서 행하셨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올바른 교육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성장해 가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께서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 하면서 가르쳐 지키라고 명령 하셨다. 첫째 기독교 교육의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하신 역사적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근거로 하고 그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출발한 교육이 아니면 진정한 교육적 가치를 후대에 끼칠 수가 없을 것이다.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에로스를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 가능성이 풍부한 청소년을 상대해서 그 에로스를 계승하게 한 것이 교육이다”고 말한 플라톤의 교육론이나 “각 사람이 지니고 있는 질료서의 소질을 인간생활의 형상에 의하여 형성하고 거기에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게 한 것이 교육”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대단한 발견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마지막 분부로 이 교육의 사명을 부여 하시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가르쳐 지키라고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은 기독교 교육의 위대한 배경을 확증 해주는 말씀이다. 둘째 기독교 교육의 대상이다. 지구상에 이스라엘 민족만큼 교육에 성공을 거둔 민족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교육의 대상은 이스라엘 민족이란 극히 제한된 민족 교육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가르치라고 말씀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사마리아성에 가서 그 곳에 죄 많은 여인을 상대해서 천국 복음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을 교화 시켰던 것이다. 그 뒤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도 오랜 전통과 굳어진 관습을 깨뜨리고 그곳으로 찾아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율법시대의 선지자들에게는 ‘유대나라’란 국경선이 그어져 있었으나 담이 무너진 지금 주님은 모든 족속으로 가서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 인종차별이 심했고 종파 관념이 철저했던 유대인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너무나 근시안적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종의 차별이나 지역의 차별은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의 눈을 저 멀리 휴전선 넘어 까지 확장해 개성도 평양도 신의주도 찾아가서 제자삼고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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