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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재검토사랑의 힘은 어떤 힘보다 위대하다. 참으로 인간 생활에서 사랑이란 낱말처럼 아름다운 말은 없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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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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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은 ‘사랑안에서 성장’

사랑의 힘은 어떤 힘보다 위대하다. 참으로 인간 생활에서 사랑이란 낱말처럼 아름다운 말은 없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다.

이 질문은 사랑이 모든 인간 생활의 기본 동력이 되므로 베드로에게 확인하신 것이다. 기독교 복음전파에 수행해야 할 큰 사명은 최대의 요건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 하셨는데 이 질문은 그리스도인에게 큰 인상을 주는 질문이다.

지금 이 질문은 주님을 버리고 옛 직업으로 돌아가서 고기 잡는 어부가 된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배와 그물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한 후에도 예수님은 두 번 더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되풀이 하셨다. 베드로는 두 번 다 “주께서 아시나 이다”로 지혜로운 대답을 했고, 그 대답을 들으시고 베드로에게 할 일을 맡겼다. 주의 어린양들과 자란 양들을 돌보고 먹일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먼저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시고 두 번째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예수는 먼저 힘없고 지식 없고 권세 없는 어린 양들을 생각 하셨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의 그리스도적 양육에 얼마나 중요성을 두시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주님 부활이후로 부녀자들의 해방과 어린이의 권리향상에 기독교의 공헌이 얼마나 컸음을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다.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 하셨을 때의 양은 자라나는 양을 가리킨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40세 전후하여 새 길을 개척하므로 그 때의 종교적 영향이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필요하다고 한다. 사람의 종교적 생활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세상 떠날 때까지 필요한 것이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질문이다. “네가 배와 그물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신 질문은 다른 말로 바꾸면 “네가 애지중지한 네 재물이나 네 자녀보다 나를 사랑하느냐”와 같다. 이 질문은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다.

주께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의 질문으로 베드로를 곤란케 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주님과 모든 그리스도인과 맺어진 상호관계에서 가장 중대한 핵심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사랑 속에서 맺어지고 사랑 안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생명은 전혀 다른 각도의 인격으로 분리된다. 참을 사랑하고 그 참이 주는 사랑 속에서 성장해가는 인격과, 거짓을 사랑하고 거짓이 주는 사랑 속에서 자라나는 인격과의 사이에는 서로 통할 수 없는 깊은 계곡이 생긴 것이다.

베드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을 받고 그의 과거를 뉘우쳤을 것이다. 그는 주님을 세 번 부인 했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보았지만 그 옛날 어부 직으로 복귀 하였다. 밤새워 그물질 했지만 헛수고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책망 하시지 않으시고 사랑을 말할 때 그는 과거에 진실하지 못했던 그리고 참되게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일들을 뉘우쳤다. 그 때 주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어 베드로에게 목회와 교육을 부탁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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