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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한 두 제자코놉인언은 낙심 하는 자를 가리켜 ‘자기 영혼에 빠진 사람’이라고 했다. 낙심은 인간 영혼에게 막다른 재앙이다. 낙심의 뜻은 ‘마음이 떨어졌다’는 의미인데, 깊은 영혼의 심연 속에서 짙은 어둠을 경험한 심정이 낙심이며 마음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4.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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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이웃과 나누기 전에는 ‘우리 것 되지 못해’

코놉인언은 낙심 하는 자를 가리켜 ‘자기 영혼에 빠진 사람’이라고 했다. 낙심은 인간 영혼에게 막다른 재앙이다. 낙심의 뜻은 ‘마음이 떨어졌다’는 의미인데, 깊은 영혼의 심연 속에서 짙은 어둠을 경험한 심정이 낙심이며 마음이 떨어짐과 함께 유체도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때 하는 것이 낙심이다. 예수님의 두 제자가 낙심하면서 낙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삼일이 지났으나 빈 무덤 외에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낙심해서 엠마오로 낙향하고 있었다. 이 때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성경을 통해서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의 교훈을 전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종말론적 부활을 확증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엠마오 도상에 있는 제자들은 오늘 예수를 믿으면서 실망과 좌절에 빠진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같다.  현실의 수많은 장벽 앞에 꿈과 소망을 포기하고 있다. 실패, 고난, 죄 짐에 눌려서 신앙을 포기하는 자가 너무나 많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지식 등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살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과 실망에 빠진다. 주께서 두 제자에게 찾아오심은 오늘도 이런 자들에게 찾아오심과 같다. 세상에서는 실패한듯하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궁극적 승리를 보장한다.

엠마오는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두 제자는 지는 해를 향해서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서 여행을 했다.(민21:11) 그리스도인은 해지는 석양을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해 뜨는 동쪽을 향해서 힘차게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절망을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소망을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두 제자는 지금 주께서 원하신 방향이 아니라 정 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희망을 잃어버린 절망자의 탄식이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 했다. 바로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성경 예언의 말씀을 설명하자 생의 뜻은 분명해지고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보이셨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후회와 실의로 가득 차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어조로 사건의 경위를 질문하셨다. 죽음을 당하신 예수에 관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주님은 혁명가도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해방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은 인류구원을 위한 메시야로 오셨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현실적으로 산적한 문제들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었던 구원이 무엇인가 깨우쳐 주어야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어떻게 게시 되었는지 자신에 대해서 조목조목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주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잘못된 인식과 시각을 뒤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그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 주님을 모세나 엘리아나 다른 선지자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현실의 압제와 로마의 압박에서 해방 시켜주실 정치적인 메시야가 되기를 원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놀랐지만 그것의 마음속에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주께서는 그들의 영적무지와 불신앙을 책망하시고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주니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영안이 열려 주님을 볼 수 있었다. 주께서 이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시고 저희에 가까이 올 때 예수께서 더 가려는 순간에 저희가 강권하여 함께 유하기를 원하니 그 집에 들어가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강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의지에 맡기고 초정을 기다리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제일 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험할 수 있는 예물을 주셨으니 그것이 곧 자유의지다. 그 자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초대 할 수도 있고 거부 할 수도 있다. 부활의 주님은 교회의 주인일 뿐 아니라 각 가정에 귀하신 분이시다. 두 사람은 얻은 기쁨을 나누기위해서 곧 사도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부활의 기쁨을 자기들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했다. 기독교의 복음은 다른 사람과 나누기 전에는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리도 그리스도 부활의 소식을 나누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이웃에게 나누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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