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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셨느니라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고백록에 죽음을 슬퍼한 아들에게 들려준 감동적인 내용이 있다. 이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에 대한 것이었다. 모니카는 처음에 죽으면 자기 남편 곁에 묻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있는 남편 무덤 곁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4.0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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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죽음보다 생명이 강하다는 사실 증거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고백록에 죽음을 슬퍼한 아들에게 들려준 감동적인 내용이 있다. 이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에 대한 것이었다. 모니카는 처음에 죽으면 자기 남편 곁에 묻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있는 남편 무덤 곁에 자기 무덤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따라서 이탈리아로 가서 살게 되었다. 모니카는 자기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내 몸은 아무 곳에나 묻어다오. 장지문제로 신경 쓰지 말아라”고 하였다. 어떤 분이 그녀에게 “고향과 너무 멀리 떨어져 묻히게 되어 두렵지 않느냐”고 질문했을 때 그녀는 “하나님은 먼 곳에 없다”고 대답을 하였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삶은 무덤에 집착하지 않는다. 부활 후 첫날 예수그리스도의 무덤에 찾아간 여자들에게 천사가 일러준 말 “살아 나셨느니라” 이 말씀은 교회에 활기를 주고 용기를 주며 지탱해 준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금요일에 모든 것이 끝이 난 것처럼 절망의 그림자가 엄습했다. 그러나 구원의 빛은 거기서부터 비추기 시작했다. 우리의 영생을 향한 희망의 기반은 우리 속의 본성과 혼합되어있다. 우리가 환란과 곤란을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영생을 바라는 것은 영생이 확실히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희망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시 사심으로서 영생의 실제를 증명하셨다.

그가 다시 사심으로 죽음보다 생명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증거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재생한 것 같은 봄의 기적을 보이시면서 “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도 나처럼 살리라”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본성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전도서 3:11)을 통해서 영생의 표적을 주셨다. 예수님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14:8) 그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씨름 하셨으며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탄의 권세를 철폐 시켜버렸다.

이것은 한 점 검은 구름이 태양을 잠깐 동안 가릴 수 있으나 영원히 가릴 수 없는 것처럼 사탄의 검은 구름이 의의 태양되신 예수님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예수님의 부활 기사는 성경의 문자보다 그 제자들의 변화와 그리스도인의 변화에서 그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들의 새 통찰력 새 능력 새 사랑은 그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부활하신 주님으로밖에 설명 할 수밖에 없다. “그가 살아 나셨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으로 확실한 보증을 가졌으며 그의 확신은 우리의 믿음과 기도 생활로 나타난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준 말씀을 듣고 무덤을 찾아갔을 때는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찾아갔지만 무덤을 떠나 올 때는 기쁨과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떠나왔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사탄의 족쇄를 확실히 철폐 시켜버린 사건이다.

사도행전의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했다. 증인이란 헬라어로 말투스 라고 하는데 순교의 의미가 있다.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언제나 순교 같은 위험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한결 같이 복음을 위해서는 몸과 물질과 시간을 이미 하나님의 제단에 바칠 준비가 다 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복음을 위해서 죽기를 소원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한마디로 주님이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 부활의 역사적 단회의 사건은40일후의 승천을 가졌고 10일후 성령강림으로 이어졌다. 오순절 사건은 열매 맺는 신령한 절기로 바꾸어지게 되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점화하기 시작했던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집에서든지 거리에서든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존재 목적 같은 뚜렷한 삶의 색깔을 사도들에게 찾을 수 가 있었던 것은 주님의 부활을 보았고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누구를 위해서 사는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도들은 오직 이것 때문에 살았다고 자신 있게 들려주었다. 이것이란 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오직 다시사신 예수 한 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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