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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의 보혈제2차 대전 중 한 독일군 포로가 많은 피를 흘리며 연합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수혈을 받지 아니하면 죽을 것이라는 의사 진단이 내려졌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는 12명이나 되는 연합군 병사들이 헌혈을 하려고 찾아왔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3.2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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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중 한 독일군 포로가 많은 피를 흘리며 연합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수혈을 받지 아니하면 죽을 것이라는 의사 진단이 내려졌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는 12명이나 되는 연합군 병사들이 헌혈을 하려고 찾아왔다. 이 병사들은 적군이라고 해서 자기네 피를 주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적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헌혈을 하였다.

나중에 군의관이 “연합군 병사들과 자신의 피로 인하여 당신이 살았다”고 독일군에게 말해주었더니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보혈을 흘리셨다. 그때 흘렸던 예수님의 보혈은 지나간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우리는 지나간 죄와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벌 받고 거절당했다.

예수가 과거의 죄를 소멸시켰기에 우리의 잘못은 용서받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장애물이 제거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은 새로운 미래를 주셨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였고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녀가 되게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찌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이 개입되었을까.

그 새로운 관계가 유효적절하기 위해서 왜 예수께서 죽으셨을까. 그 이유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였다. 생명은 피에 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히 9:22)

히브리인들은 피를 생명으로, 생명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일 귀한 피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지나간 제례에 관한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거기에는 변함없는 진리가 숨어있다. 그 진리란 곧 ‘사유란 값비싼 것’ 이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사유도 비싸다. 가령 어떤 자녀가 잘못되어 그 부모가 그 자녀를 용서한다고 하자.

그 용서에는 부모의 눈물이 들어있고 머리를 아프게 했고 얼굴에 주름이 잡혔고 잠 못 이룬 긴 밤이 있었고 마음이 찢어진 단장의 괴로움이 있었다.

하나님의 사유도 비싸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동시에 공의롭고 거룩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우주의 기호인 도덕률을 사람을 위해서 깨뜨릴 수가 없었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의 구조가 무너질 것이다.

사람의 죄를 사해주시려고 필요한 무서운 값을 하나님 혼자서 내셨다. 사유란 괜찮다, 염려하지 말라가 아니다. 사유는 세상에 제일 값비싼 희생이 따르는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이 사유는 없다. 사유가 있기 위해서는 저 골고다의 보혈이 있어야 했고, 골고다의 보혈이 있었기에 영생도 소망도 천국도 있다. 히브리말로 불리는 골고다는 예루살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골고다는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과 더불어 신령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소망의 언덕이다. 골고다 언덕은 만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붉은 피 한 방울 남김없이 흘려주신 보혈의 언덕이요, 용서와 긍휼과 자비가 세워진 사랑의 언덕이다.

역사학자 제롬은 이곳에 아담의 시신이 묻혀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예수살렘 어디에서라도 머리를 들고 쉽게 볼 수 있었던 골고다 이었기에 예수님은 만민이 우러러 보는 가운데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였다.

만약에 예수님이 골방이나 광야나 랍비의 학교 같은 밀폐된 장소에서 죽으셨다면 보편적 구속의 의미는 퇴색되었을 것이다. 온 세계가 우러러 보는 밝은 하늘아래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으니 지금도 골고다라고 부를 때마다 저절로 머리가 숙연해짐을 금할 수 없다.

영혼 전부터 준비된 구속의 동산, 속죄의 언덕이라면 우리는 담대하게 골고다의 보혈로 내 죄를 씻어 주소서라고 부를 수 있다. 골고다란 아람어로 해골이라는 뜻이다.

에스겔 골자기에 해골뼈가 사방에 뒹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셨을 때 대언하자, 이 뼈에 저 뼈가 붙고 그리고 생기를 대언하니 큰 군대를 이루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환상을 에스겔이 보듯이 골고다에서 흘리셨던 예수님의 보혈은 에스겔 골짜기 같은 세상에 생명을 살리는 생기가 불기 시작했다. 그 형장은 해골 같았다.

예수는 산위에서 죽으셨고 굴속에서 죽지 않으셨다. 그의 죽으심은 그의 사심같이 개방되었다. 그 해골 같은 산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용기와 자비로 깨어져 거기서 온 세상을 위한 새 생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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