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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향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고,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인하여 흐르리라 (전 1:7) 강물은 그의 근원인 바다로 흐르고 해는 져서 떴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떠오르고, 낙엽은 그를 길러 피어오르게 했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2.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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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고,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인하여 흐르리라 (전 1:7) 강물은 그의 근원인 바다로 흐르고 해는 져서 떴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떠오르고, 낙엽은 그를 길러 피어오르게 했던 땅위에 떨어져 돌아간다. 대지는 모든 자연적인 것의 어머니로서 자연은 그에게서 나서 그의 품으로 돌아간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전12:7) 돌아간다는 것은 생명의 원리다. 돌아가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것은 변화를 의미한다. 그 변화의 궁극적 목적은 환원이다. 이는 만물이 주께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롬11:36)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보존되며 필경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만물이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이 있고 구원이 있으며 영원히 존재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돌아가는 인생을 성경은 행인과 나그네라 한다. (벧전 2:11) 나그네를 헬라어로 ‘파로이코스’라고 한다. 타향살이를 한 사람 낮선 사람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이중적인 의미로 나그네다.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의 사람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면서 산다. 세상 사람들이 듣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고, 그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을 한다. 그들이 슬퍼할 때 기뻐한다. 회개하고 세상향락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볼 때 낮선 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들과 돌아갈 고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날에 수많은 귀성객이 고향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본향은 여기가 아니고 저 천국이다. 이 땅은 어디든지 타향이요 객지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하나님께 전세내서 살고 있는 여관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철저히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장막에 살면서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천성을 사모하면서 나그네로 살았다(히11:9-10) 이 땅위의 풍요도 명예도 별것이 아니다.

분수없이 욕심 부릴 필요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리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그저 지나갈 뿐이다. 그런데 지나칠 다리위에 집짓게 광분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스도인은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며 세상의 기준이나 세상 법을 추종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살지만 하늘나라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모든 책임을 다 하지만 하나님나라 법을 지켜야 된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이 땅에 살 영주민이 아니다.

저 위에 천국본향을 향해서 가는 귀성객들이다.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어떤 방해물 때문에 주저앉거나 세상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불원간에 천국 본향에 귀향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서 귀향 보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신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1:17) 고 하신다.

이 말씀은 나그네의식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그네는 첫째, 떠날 준비를 해야 된다.(암4:12) 나그네가 하룻밤 여관에 투숙하면서 내일이면 떠날 텐데 주인 행세를 하면 볼품이 없다. 그리고 갈 목적지가 분명 해야 된다. 그리스도인의 목적지는 저 천국이기에 언제 떠나든지 기쁨으로 떠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성난 파도, 동족의 끈질긴 위협, 추위 , 굶주림 등의 고난을 굳은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천국 귀향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날에 수많은 귀성객들이 고향을 찾아 간다. 그러나 북에다 고향을 둔 천만 실향민들이 있다. 그런데 육신의 찾아갈 고향은 있지만 영혼의 고향(천국)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집보낸 딸을 바라보면서 “애야 부디 부디 잘 살아라” 하면서 딸의 행복을 비는 부모만큼이나, 육신의 부모를 통해 주어진 이 세상의 삶을 응시하면서 마지막 천국 귀향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 집나간 자식이 날씨만 추워도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부모님처럼 천국귀향을 기다리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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