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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2.0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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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거짓말을 배가 시킨다

 

하나님은 매체를 통해서 말씀 하실 때가 있다.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 하실 때는 말씀으로 창조 하셨고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후부터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라고 하였다. 아담이라 부르는 것이 이름이었고 취하여 먹는 것이 음식이었다.

엿새 동안 창조는 이것으로 끝났으나 한번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세계를 떠나시지 않고 계속 섭리 하셨다. 이것을 본존이라 한다. 사람은 자연법칙을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고 또한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셨다. 이것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특권이다.

독특한 방법으로 인간은 만물위에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끊임없이 일하시는데 일에 궁극의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는데 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쓰여진 매개체는 인간 말고 자연일 수도 있다. 세상에 존재한 그 어느 피조물이라도 인간의 생존과 관계를 가지며 물소리 바람소리 천둥소리 짐승 울음소리 이 모든 자연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한다.(고전14:10)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중 하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물질에 눈이 어둔 발람선지자에게 나귀의 입을 통하여 책망 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다시스로 도망치던 요나에게 큰 물고기를 통해서 구원 얻을 자를 돌아보게 하셨다. 대머리 요나에게 식물교훈으로 박 넝쿨을 마르게 하신 것은 요나가 버린 니느웨성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큰 별이 나타나서 동방박사 세 사람을 인도해서 예수 탄생을 알려주셨다. 갈대 숲속에 던져진 모세를 건져 올린 것은 은총이다. 자기 선생 예수님 앞에서 옥에라도 같이 가겠다고 죽을 각오가 다 되어 호언장담하던 베드로에게 조그마한 비자아이의 고발은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비극이다.

베드로는 여종에게 불의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심신이 피곤하여 자기 수호에 방심했고 또 원수에게 잡히신 주님을 뒤 따라가며 그는 낙심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야바 뜰까지 들어간 행동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가 미리 알았다면 그 시험을 이기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험은 도적같이 임한다.

그런 시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즉각의 후퇴와 기도의 힘이 요구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배가 시킨다. 아리스토틀은… 거짓말의 형벌은 거짓말쟁이가 참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주님을 부인하고 그다음에는 맹세를 하고 그 다음에는 저주까지 했다. 그것은 심리적 사실이다.

 

예수님의 얼굴을 본 베드로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밖에 나가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다. 사람의 결심과 각오가 엿가락처럼 꺾이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때 설렁한 베드로의 마음 한 복판에 양심의 감동이 고이기 시작했다. 주님을 부인했던 그는 더 이상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하얀 밤으로 자신의 현주소를 찾으려고 몸부림칠 때 어디선가 새벽 닭울음소리가 베드로의 귀전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 닭울음소리 속에 감추어진 메시지가 잠자던 베드로의 양심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새벽 찬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주님의 나지막한 음성 앞에 더 이상 도망 칠 수 가없다.

급기야 베드로는 거친 호흡을 내쉬면서 밖에 나가서 가슴을 쥐어짜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라고 통곡했다. 회개는 연기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의 용기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제공 받았다. 베드로와 같은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도 있다.

 

베드로는 결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베드로의 일생에 그것은 크나큰 오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약이 되기도 하였다. 두고두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선교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같은 사건은 우리에게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어려움을 넘어서 나아가야할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다. 가롯유다는 자신이 범한 죄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옥에 떨어졌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하여 새롭게 변화됨으로 수제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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