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1.16 토 11:33
상단여백
HOME 논단 쓴물단물
아이티를 도웁시다로마 군인이며 크리스챤이었던 말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추운 겨울 날 길을 가다가 추위에 벌벌 떨면서 구걸하는 걸인을 만나게 된다. 말틴은 너무나 불쌍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외투를 벗어 반쪽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1.28 20:03
  • 호수 0
  • 댓글 0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말라

 

로마 군인이며 크리스챤이었던 말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추운 겨울 날 길을 가다가 추위에 벌벌 떨면서 구걸하는 걸인을 만나게 된다. 말틴은 너무나 불쌍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외투를 벗어 반쪽을 찢어서 거지 등에 덮어주고 반은 자기가 걸치고 지나갔다. 그날 밤에 그가 꿈을 꿨는데 예수께서 공중의 천사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런데 자기가 거지 등에 덮어주었던 그 외투 반쪽이 예수님 등에 덮여 있었다. 그 때 한 천사가 예수님께 누가 그 외투를 주었느냐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내 종 말틴이 주어서 입었노라 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께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매일 매일 메스컴을 통해서 중남미 카리브해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 덮친 7.0의 강진으로 말미암아 1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생겼으며, 수 십 만 명의 이재민과 지진 고아 10만 명이 생긴 끔직한 사건들을 목도하고 있다.

이토록 끔찍한 재앙을 당한 아이티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각 국의 구조대 및 지원 부대가 그 곳에 도착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모아놓은 지식이나 얻어놓은 명예나 쌓아놓은 재산을 표준으로 삼지 않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느냐 그들을 도왔는냐 여부를 보신다. 거액의 재산이나 많은 지식이 요구되지 않고 벗은 자에게 옷 한 벌, 굶주린 자에게 빵 한 조각, 갇힌 자를 위로하는 것. 즉, 누구나 간단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타산적인 도움이 되어서는 안된다. 선전용이나, 전시 효과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않도록 하라(마 6:1)고 하셨다. 그 도와준 자는 그것이 예수님을 돕는다던지 그 도움으로 공력을 쌓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돕고 싶어서 도와주는 것이지 타산적이 아니고 사랑의 발로다. 오늘도 기천만원 또는 기백만원씩 기부하고 자기 얼굴과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TV나 신문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흐믓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자기선전이요 변장된 이기심이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자선은 타산적이 아닌 돕고 싶어서 도울 뿐이다. 그런 남모를 도움은 바로 주님을 도와주는 행위다. 세상 사람들은 강자에게는 친절하고 약자에게는 함부로 한다. 그것은 모든 행위의 요인이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다. 비천하고 가난한 자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고 오히려 귀찮은 일만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비참해진다. 지극히 작은 자로 느껴진 자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 적선이요, 구재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다. 아이티 국민은 지극히 적은 자들이다. 그들은 애타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마실 물이 없어 기갈 상태에 있고, 치료할 약이 없어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들을 도와야한다.

매사를 심판의 거울처럼 자신을 쳐다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최소한 자기 생애의 보람을 위하여 매순간을 가치 있게 살아간다. 인간은 태어나서 일하고 먹고 살다가 그리고 무엇인가 남기고 떠나간다.

그 남긴 것 중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언행심사며 대신관계다.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사람은 최후의 심판을 믿고 산다. 이러한 자들은 누구나 타인의 삶은 사정없이 유기한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자들이 많고 가만히 있어서 좋은 일을 긁어 부스럼을 내는 미련한 자들도 있다.

언젠가는 백 보좌 심판대에 서서 선악 간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때에 거기서는 깨알 같은 이유와 핑계도 소용이 없다. 그때 심판자 주께서 네가 무슨 학위를 받았느냐 재물을 얼마나 소유 했느냐 어떤 직함을 가졌느냐를 묻지 않고 네가 가진 것을 어떻게 선용했느냐 그것을 묻게 될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을 가지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얼마나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느냐 그것이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