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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의 지배자인생살이는 마치 갈릴리 바다처럼 풍랑이 쉬지 않고 일어난다. 2009년도에 일어났던 풍랑은 또 어떤 색깔로 2010년에 일어날지 예측 할 수 없다. 이런 풍랑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일 수 도 있고, 인재 일수도 있다. 항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1.1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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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난국에서 최대의 믿음 요청

인생살이는 마치 갈릴리 바다처럼 풍랑이 쉬지 않고 일어난다. 2009년도에 일어났던 풍랑은 또 어떤 색깔로 2010년에 일어날지 예측 할 수 없다. 이런 풍랑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일 수 도 있고, 인재 일수도 있다. 항상 모순 속에서 추구하는 인생은 허구일 수 도 있고 일장춘몽 일 수 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고해를 헤엄쳐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리알처럼 해맑은 바다는 좋지만, 언제 또 풍랑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바다다. 갈릴리 호수에는 풍랑이 자주 일어난다. 이 호수는 해면보다 200m낮으므로 그 주위의 산골짜기들이 마치 바람통처럼 산바람을 내리 불러 삽시간에 큰 풍랑이 일어난다. 갈릴리 바다는 햇볕타고 비바람 부는 생의 상징이다.

갑자기 일어난 평지풍파 곧 질고, 배신, 전쟁, 죽음, 등은 파도처럼 무섭다. 이때 인생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평상시에는 자기들의 항해기술이 자기들을 보호해 줄지 알았다. 그러나 위기에 처하자 죽음을 바라본 순간 자기들의 기술과 경험, 지혜가 바닥 난 것을 깨달았다. 위기에 처한 제자들은 주님을 찾았다.

잠에서 깨신 주님께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공포심을 깨뜨리고 주님의 능력과 임재를 믿게 하셨다. 여기서도 예수님의 권위와 그를 믿는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몇 푼어치 안 되는 지혜와 기술을 의지 할 것인가 주님을 의지 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어느 시골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예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해주신 이야기를 들려주고 집으로 가는데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 때 한 아이가 “선생님 예수님께서 여기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의 말이 옳다. 생의 폭풍이 우리 영혼을 뒤흔들 때 예수님이 거기 계시면 사나운 바람도 잔잔케 된다.

차고 쌀쌀한 슬픔의 바람이 불어올 때 예수님의 안위가 그것을 고요하게 한다. 뜨거운 울화의 바람이 불어올 때 예수님의 평화가 그것을 안전케 한다. 의심의 폭풍이 신앙의 기초를 흔들 때 예수님의 임재가 평온을 얻게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결단의 기도를 하러 가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두려워하지 말라”(요14:27)

예수님의 평안은 어떤 세력도 환란, 핍박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이다. 지금 우리 인생은 거친 바다에 헤엄치면서 불빛을 따라 항해하는 선원과 동일하다. 태풍은 없어져야 하고, 항해는 순조로워야 하는데 전혀 예측 할 수 없는 것이 바닷길이다. 2010년 어느 시점에서 나의 인생 항해 길에 풍랑이 일어날지 예측 할 수 없다.

바울이 승선했던 알렉산드리아호가 유라 굴로 태풍을 만나 배에 있던 짐들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리고 ,살 소망까지 희박한 바울과 동승했던 승객들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부지기수다.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최대의 평온을 유지한 비결은 주께 의지할 때만 가능하다.

그런대 예수님의 제자들은 풍랑의 지배자 예수께서 승선 하였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최고의 불안에 떨고 있었다. 주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바다는 그의 지배아래 있고, 전능자이기 때문에 풍랑은 그를 해치지 못한다.

최대의 능력 앞에 대좌해 있으면서도 최대의 공포를 떨고 있는 모습이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언제든지 파도가 더 크게 보이면 누구든지 그런 공포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기에 믿는다 하면서도 근심 걱정이 그칠 날이 없고 기도 하면서도 탄식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캄캄한 밤일 수록 등불이 필요하고 험준한 고갯길 일수록 지팡이가 요구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무덤가에 선 마리아처럼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것은 믿음의 문제다. 우리의 핸들을 주님께 맡기자 그리하면 풍랑의 지배자 주께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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