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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 <40>실물 사람에 집중하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7.09 14:07
  • 호수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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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정 목사(복된교회)

하버드대학교에서 1938년, 724명을 선정하여 관찰, 연구를 시작합니다. 2023년까지 장장 85년 동안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추적하여 책으로 낸 “행복 탐구 보고서”(로버트 윌딩거, 마크 슐츠, 박선령 역, 비즈니스북스, 2023)라는 책을 읽습니다. 지금도 그 연구는 계속되고 있구요. 그 책이 제시하는 바가 평생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적 관찰의 결과가 성경의 가르침을 실증적으로 강화하니 제게도 큰 교훈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긴 종단 연구보고서인 이 책의 길고 복잡하고 다양한 사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결론이 있습니다. 단순한 쾌락을 추구하는 경우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 ‘에우다이모니아’ 즉, 가치 있는 삶의 행복은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가깝게는 가족, 특히 부부관계의 신뢰와 따듯함이 행복의 결정적 요소입니다. 아울러 친구, 주변 사람들, 가볍게 스치는 카페의 바리스타와 경쾌하게 나누는 인사 한마디가 행복을 증진하는 요소라니 저도 독자 여러분께도 그 경쾌한 인사를 드립니다. 수많은 사람이 행복의 요소일 것으로 가상하는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성공 등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람도 성경의 가르침과 닿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인치시고, 내주하실 때, 그분께 주도권을 드리면 충만하십니다. 어떤 경우는 특별한 사역을 위해 충만하십니다. 말하자면 ‘테스크포스팀’을 이루는 거지요. 여러 영적 기능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충만 상태가 건강하게 이어지면 성령의 은사가 됩니다. 교회를 세우려는 목적으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대표적으로 블레셋을 쳐부숴야 하는 삼손에게 주신 기능적인 은사였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군사 3천 명을 물리쳐 이스라엘을 지킵니다. 사람의 힘이 아니지요. 그러나 삼손은 그 은사를 건강하게 보존하지 못해서 비참한 말로를 만납니다. 현대 교회 안에서도 기능적인 은사가 나타난 이후 불행으로 마감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기능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가리킵니다.

또 다른 충만은 신약의 바나바에게 충만하신 사례처럼 인격적 성숙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충만은 인격적인 성령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사는 초자연적인 경우도 있고, 일반 사역을 위한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를 아울러 최고는 사랑의 은사랍니다. 성령의 열매를 여는 첫 덕목도 사랑입니다. 은사와 열매를 연결 짓는 관절 같은 덕목이 사랑이겠군요. 성경은 바로 그 사랑이 내게 주신 사람을 대하는 기본자세라고 가르칩니다.

미디어 홍수 시대를 단박에 제압한 건 스마트폰입니다. 거기 사진 촬영, 인터넷 접속, 음원 공유, 지도 등 전화기 이상의 기능이 탑재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신체의 일부, 삶의 일부가 된 지 오랩니다. 그 안에 제한되지 않는 세상이 들었습니다. 전 국민이 이걸 들고 다니며 저마다 그 세계에 빠져듭니다. 오래된 설명입니다만. ‘가상 공간의 정보에 몰입하느라 내 앞에 있는 실물을 놓친다.’는 현상이 강화됩니다. 거기서 제법 쓸만한 정보들을 얻어 내는 건 중요한 습득입니다. 내 앞에 사랑하고 관심하여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이 없는 경우라면 좋습니다. 단, 실물 사람을 두고 가상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면 관계는 건강할 수 없지요. 그럼요!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관찰한 결과 중의 한 발견이 스마트폰 과몰입 현상입니다. 사람을 두고도 넋의 절반쯤은 스마트폰에 잠겨있습니다. 면전에 앉은 사람은 의문의 일패를 당합니다. 허깨비랑 앉은 거니까요.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도 눈길을 주지 않으니 타인입니다. 자기 스마트폰 안에 든 정보를 남에게 게시하는 데 급급할 뿐, 도무지 실제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그 결과가 관계 단절, 불화 생산, 불행 창조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성경의 가르침 모두 실물 사람과 관계 증진이 가치 있는 행복의 열쇠랍니다. 실물 사람에게 마음 담아 눈과 귀를 주는 게 신앙 실천이겠습니다. 스마트폰은 가까이 대하고 사니 익숙하고 편리할 뿐 실물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꼭 들여다봐야 할 만큼 중요하거나 시급한 도구 아닙니다. 슬며시 덮어 밀쳐 놓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을 집중하여 그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게 훨씬 ‘에우다이모니아’를 증진합니다.

심방 중에 제게 연결이 닿지 않거든 그런 까닭으로 아예 이걸 놓고 다니는 사연인 줄만 아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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