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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죽으리라” 정신 무장하고 직무수행 각오!기성, 제118년차 총회 임원, 순교지 순례서 다짐
  • 총괄업무 기자 고광배 목사
  • 승인 2024.06.13 09:06
  • 호수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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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장 류승동 목사)는 제118년차 총회 임원들이 지난 5월 31일 정읍 두암, 하리, 강경, 병촌교회 등 주요 순교지 4곳을 순례하며, 교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정신으로 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들은 순교의 뜻을 담아 첫 일정을 시작했다. 이번 순교지 현장 순례에는 문창국 총무를 비롯해 총회 본부 국장, 과장, 팀장 등 직원들도 동행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정읍 두암교회(홍용휘 목사)는 6.25 전쟁 당시 23명의 순교자가 나온 순교지다. 총회 임원들은 홍용휘 목사의 안내에 따라 좌우 16개의 돌비를 설치한 순교 영성의 길을 통해 두암교회 본당 안으로 들어가 두암교회 23인의 순교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시청했다. 이후 두암교회 본당 옆에 조성된 ‘순교 23인 합장묘’와 ‘23인 순교 기념탑’ 등을 둘러보고 헌화하며 23인이 흘린 순교 피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이후 순교 헌신을 다짐하는 특별한 성만찬예식과, 순교자들의 정신을 의미하는 타종도 했다.

두 번째 순교지 전북 삼례 하리교회(이병성 목사)에서는 임광호 전도사의 순교 이야기를 들었다. 1950년 하리교회를 개척한 임광호 전도사는 성전건축 기공예배를 드리고 일어난 6.25전쟁 당시 피난을 거절하고 성전 건축을 계속하다가 공산당에게 끌려가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이후 김복순 사모가 구속되었으나 겨우 풀려나 하리교회 건축을 무사히 완공했다.

세 번째 순교지는 충남 논산 강경교회(강요한 목사), 이곳에서 일제에 저항하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벌여 신앙과 민족정신을 지켜낸 강직한 신앙을 되새겼다. 1924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백신영 전도사와 주일학교 김복희 선생님 그리고 주일학생 57명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면직과 퇴학 등의 처분을 받았다. 1925년에는 주일학교 윤판석 학생을 중심으로 일본의 역사교육을 거부하며 항거했고, 1943년에는 이헌영 목사가 천황 심판론을 주장하여 구타당하고 수감 되기도 했다.

네 번째 순교지는 충남 병촌교회(이성영 목사), 1943년 신사참배 거부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되고, 1950년 9월 27일과 28일 이틀간 공산 세력의 무자비한 총칼에 의해 신자 66명이 순교 당한 교회다. 전체 교인 74명 중 남자 27명 여자 39명 등 총 66명, 19세대의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 이후 공산 세력에 가담한 마을 사람들을 용서하고 포용하며 무너진 마을과 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앞장서 1956년 순교자 기념교회를 세웠다. 병촌교회의 다큐멘터리 순교 영상을 시청하고, 순교 기념탑에서 참배했다.

총괄업무 기자 고광배 목사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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