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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하는 사람들 / 전북지방회 독서클럽‘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6.13 08:55
  • 호수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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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용 목사(새소망교회)

-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사회사적 성경 읽기 -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는 주변에서 자주 듣지만, 정작 목회 현장에서 초대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파악하고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을 느끼는데, 하물며 2천 년의 시간 차와 그레코-로만 문화권이라는 생소한 문화권에 속했던 1세기 교회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에게 알려진 그레코-로만 세계에 대한 지식들의 대다수는 당시 엘리트들이 쓴 글들로,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1세기 교회 구성원들의 대다수는 엘리트 계층이 아니라 하층민들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사보다는 사회사적 접근을 통해서 파악한 1세기의 그레코-로만 세계의 사회상을 토대로 초대교회 구성원들의 삶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우선 ‘서원’으로 번역된 ‘스콜레’의 어원적 접근을 통해서, 에베소에서 바울 사도의 주 사역 무대였던 두란노 서원이 상류층들이 여유 시간에 강의를 듣고 공부하던 장소가 아니라, 중소 상인들이 일하던 공장이나 공방이라 제안한다. ‘스콜레’라는 단어가 1세기에는 서원 외에도 ‘중소 상인들의 일터’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스데반이 속했던 헬라파 유대인 회당의 정체성에 대해 행 6:9-10에서 ‘자유민들’이라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구레네와 알렉산드리아와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자유민들로 소개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자유민은 ‘리버디노’를 번역한 것으로, ‘해방된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스데반이 속한 헬라파 회당의 구성원들은 각지에서 노예로 살다가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스데반 역시 해방 노예 출신인 것이다.

한편, 저자는 로마의 노예제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19세기 북미의 노예제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가장 큰 특징은 로마의 노예제는 열린 시스템이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난해질 수 있고, 어느 민족이나 전쟁에서 질 수 있어서, 노예가 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예에게서 벗어나는 출구도 열려 있다는 것이다. 로마의 노예들은 페쿨리움이라 불리는 준 사유재산이 허용되어 재화를 축적하는 것이 가능했고, 돈을 모아서 자유를 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예 중에는 자유민보다 더 부유하거나 권력을 지닌 이들도 있었다. 특히 황제에게 속한 노예 중에는 허드렛일하는 전형적인 노예도 있지만, 황제를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최고위 권력층도 있었다. 따라서 로마 사회에서 한 개인의 지위는 단순히 그가 노예인가 자유인인가 하는 한 가지 질문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노예든 해방노예든 자유인이든 누구에게 속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울이 즐겨 사용했던 ‘그리스도의 종(노예)’라는 표현 역시 겸손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황제보다 더 높으신 그리스도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초대교회와 닮은꼴의 사회조직들을 비교함으로써, 초대교회의 조직과 운영의 다양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초대교회라는 조직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유사한 사회조직들과 교류하면서 그 운영 방식을 모방하기도 하고, 차별화하기도 하면서 형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닮은 꼴 후보로는 ‘자발적 조합(콜레기움)’와 ‘오이코스(가정교회)’와 ‘철학 학파들’과 ‘유대인들의 회당’을 제시한다. 여러 유사점을 갖는 각 후보들이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교회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다만 상호 비교를 통해서 1세기 초대교회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 소중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저자는 초대교회가 한 유형이 아닌 다양한 유형의 영향을 받아 각 공동체별로 다양한 모습을 띤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고린도교회는 부유한 가정(오이코스)을 모판으로 하여 발달했다고 보았으며,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은 최소한 사회적 형태 면에서는 자발적 조합들(콜레기아)과 유사성을 가지며 발달했고 보았다. 유대적 색채가 강했던 공동체듫은 회당(쉬나고게)의 모델을 많이 따랐을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초대교회들이 철학 학파와 비슷했던 면도 있다고 보았다.

이외에도 저자는 교회의 박해 정황이나 교회에서의 여성의 위치, 그리스도인의 교육 수준 및 초대교회 예배의 특징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1세기 교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박영호,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 새물결플러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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