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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새 마음/새 사람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로 표현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피조물이다. 과거는 우리들이 지나온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미래는 숨겨져 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과거는 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1.01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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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마음은 하나님과 결합할 때만 가능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로 표현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피조물이다. 과거는 우리들이 지나온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미래는 숨겨져 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과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과거에 겪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혜를 준다. 그래서 과거 역사는 미래의 생활을 위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새해가 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우리는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짐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젊은 자매가 하루는 목사를 찾아왔다. 그리고 하소연을 하기를 “목사님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결심하지만 삼일을 가지 못합니다. 같은 자리만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어도 아예 어떤 계획을 세우기가 겁이 납니다”

그 때 목사가 광에 들어가서 소쿠리 하나를 꺼내왔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뽀얗게 묻었다. 목사는 그 소쿠리를 그 자매에게 주면서 이유는 묻지 말고 시냇가에 가서 이 소쿠리에 물을 조금 담아오라고 했다. 그 자매는 엉뚱한 일을 시키지만 목사님 말씀이기에 무조건 순종했다. 시냇가에 가서 아무리 소쿠리에 물을 담으려고 손바닥을 바쳐도 물이 밑으로 빠져버렸다.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 부끄러워하는 그 자매에게 목사는 “자매님 보셨지요? 비록 물을 담지 못했지만 소쿠리에 먼지는 깨끗하게 되었지요. 인생살이가 바로 그런 것이랍니다. 자기 뜻과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아도 새롭게 살려고 노력한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답니다” 라고 조언해 주었다.

비록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쉬지 않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느림보 거북이가 잠자는 토끼보다 더 낫다. 사람은 누구나 새것을 좋아하는 본능이 있다.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은 모두 새것의 대명사다.

신선하고 절대로 낡아지고 싶지 않은 욕망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제기한 질문이 영생을 얻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새것을 추구한 것이다. 늙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바로 영원한 세계와 영생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새해가 왔다는 기쁨보다 한해가 지나갔다는 조바심은 그만큼 늙어간다는 증거이며 인간은 어쩔 수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사망의 열차를 타고 절망의 터널을 지나 죽음의 종착역에 이르는 존재이다.

 

오늘의 시간은 언제나 새 시간을 소망하는 소박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 시켜 주고 있다. 역사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다. 사건은 자꾸만 변하여 간다. 인간은 역사를 통하여 삶의 지혜를 터득하며 새로운 세계로 도전하지만 곧 낡은 것 옛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전도서 기자는 해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였다 (전1:9) 절대 새로운 것, 영원히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은 변 할 수없는 하나님과 하나 되어 시간을 초월 할 수만 있다면 항상 새 것으로 새 일을 성취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이토록 새 것과 새 사람으로 이상과 욕망을 충족 시켜 줄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새 마음이다. 새 마음이란 윤리나 지적향상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나님과 결합할 때만 가능하다. 성경에서는 ‘새로움’ 이란 단어를 네오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한다. 네오스는 시간적 의미에서 새로움 이고 카이로스는 질적인 의미에서 새로움이다.

고후5:17절에서 바울은 카이로스로서의 새로운 피조물을 말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아무리 새날 새로운 제도에 새 사람을 앉혀놓아도 카이로스로서 태어나지 않으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부정 축재와 뇌물에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간적인 새날은 내일이면 또 내일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카이로스로서의 새 사람은 일 년이 모두다 새것이고 새로운 세계로서의 창조와 발전을 거듭 할 수 가있다.

새해초부터 새해말까지 새 마음으로서 새 세계를 향해 바울처럼 법칙을 잘 지키며 달려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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