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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37)창조, 진화, 총회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6.06 10:23
  • 호수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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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세상의 시원(始元)에 대한 논쟁은 오래된, 그리고 정답 없는 ‘짓거리’입니다. 과학으로 성경을 보는 눈, 성경으로 과학을 보는 눈 양자는 다 저울로 거리를 재려는 시도, 혹은 자로 무게를 재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사물의 실체를 측량한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대상을 보는 관점은 전혀 다르지요. 일테면 멋진 바위 하나를 줄자로 재어 놓고 ‘길이가 몇 미터짜리다.’라고 말한대서 그 바위의 형용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고양이는 사물을 흑백으로 인식한답니다. 사람은 색을 인식하는 눈을 가졌고, 박쥐 같은 동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 등을 통해 사물을 인식합니다. 보는 주체에 따라 보는 방법이 다른데 내 것이 옳다고 주장하니 답 없이 혼선입니다.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가 쓴 책, “창조의 신학”과 존 c. 레녹스 교수가 쓴 “빅뱅인가 창조인가”를 읽었습니다. 오랜 논쟁에 없는 답을 구하려는 우매함이지요. 전자는 다양한 논지들을 끌어다 나열했지만, 정작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지 못했거나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명분도 실리도 지켜야 하는 저자의 입장이 행간에 읽힙니다. 후자는 스티븐 호킹의 ‘빅뱅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반박하려는 목적으로 썼습니다. 저자는 수학자입니다. 그러나 과학적 논증이라기보다는 설교 한 편을 읽는 인상입니다. 신학자, 과학자가 쓴 책을 감성 시인의 눈으로 보고 끄적이니 또 어찌 객관성을 담보하겠습니까만.

창조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눈으로, 진화적 관점을 가진 사람은 또 다른 기준으로 여러 근거를 차용해서 자기 관점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논지들이 아무리 두꺼운 책을 쓰고 유명인들의 주장을 인용해 대도 결국은 진영 내부를 강화할 뿐 상대 진영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건 미리 판명 난 일입니다. 어떤 사안에 명토 박아 말하지 못하고 늘 허술한 내 논지는 또 다른 한 축으로 내 논지일 뿐이니 누구를 설득할 힘이 아예 없다는 점을 다행히 압니다.

스티븐 호킹이 어항 속의 물고기는 자기를 감싼 물과 유리로 사물을 인식하니 필연적으로 굴절된 관점을 갖는답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평면적으로 본다지요. 호킹의 그 ‘표상적 실재론’을 비판하는 레녹스 교수는 ‘실재 인식은 가시적인 현상만 말고, 기억과 이성이 동원되어야 한다’해요. 물속에 막대기를 담그면 우리 눈에 굴절되어 보이지만 오랜 관찰의 기억으로 막대기는 곧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멀리 달아나는 기차가 점점 작아 보이다가 점으로 사라지지만 그건 우리 눈으로 보는 현상일 뿐, 실제로 작아지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이성적 판단을 동원해야 제대로 사물을 인식한다는 논지입니다. 재밌습니다.
목사, 장로들이 말짱 모여서 뭔 일을 만들어 내는 총회를 열었습니다. 총회 기간에 두 가정이나 상(喪)을 당했습니다. 돌아가시는 분들의 시간은 계획되거나, 예약될 수 없으니 겹치기 일쑤입니다. 덕분에 회의장과 장례식장을 번갈아 드나들었습니다. 그래도 생각이 분주한 것은 아니니 늘 소회가 있습니다.

발언을 도맡아 하는 ‘연사’들의 설교인지, 훈시인지 모를 장광설이 지겹습니다. 툭툭 튀어나와 ‘의사 진행 발언’을 쏟아내는데 그 발언이 의사 진행에 제일 방해가 됩니다. 그런 발언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정보는 1%도 안 됩니다. “여러분이 몰라서 그러시는데”라는 발언을 들으면 다중을 우매함으로 몰아넣고 홀로 모든 걸 아는 세계에 서 있는 분을 향한 느낌이 아찔합니다. 모두 자기 관점에 갇힌 초라한 주장들이거든요. 그래도 주야장천 자기 논지를 펼치는 이들의 열성에는 존경을 보내는 바입니다.

결국은 관점이거든요.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관점의 출발입니다. 어항 속일지, 문밖일지가 사물, 사건, 사연, 사람을 인식하는 기준 됩니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눈이 흑백이거나, 총천연색이거나, 아니면 초음파일 수 있는 자기 성찰이 있지 않으면 나의 의견은 타자를 향한 공격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가슴도 열고, 눈도 열어서 내게 감지 되지 않은 타자의 형용이 있다는 점을 수용해야 합니다. 만물이 빅뱅으로 출발해서 진화로 이뤄졌다는 불변의 관점을 이미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더 진화할 필요 없이 “완전하게 창조하셨다”는 내 신앙 고백을 향해 미완의 과학적 근거들로 설득하려는 공격을 멈춰 주시기를!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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