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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 ‘하나님 나라’ 입국 절차로서의 세례와 성찬(7)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 교리교육 강론 미스타고지 중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6.06 00:00
  • 호수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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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Ⅳ. 하나님 나라와 세례 및 성찬

2. 하나님 나라와 세례 및 성찬

세례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테오도로스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관여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제시한다. 우리가 받는 세례는 상징적으로 “육체를 입은 우리 주 그리스도가 받은 세례와 같은 세례”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따라서 우리도 그렇게 한다. 예수의 세례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6-17)는 소리가 들렸다.

테오도로스는 이 구절에서 “성부는 세례가 이루어지는 목적인 양자됨의 은혜를 보여주었다”고 해석한다. 이 패턴에 따라 세례에서 상징적으로 양자가 된 자는 부활 때 실제로 양자가 될 것이다. 테오도로스는 이처럼 심오한 신비를 지닌 세례를 제대로 받기 위해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세례의 혜택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지해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세례의 혜택은 두 번째 탄생, 새롭게 됨, 불멸, 부패하지 않음, 고통을 느끼지 않음, 불변, 죽음과 노예 상태와 모든 악에서의 구원, 자유의 행복, 그리고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좋은 것들에의 참여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해 지금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허용되었으나 미래에는 실제로 하늘의 상속자요 하늘 처소와 시민권의 참여자가 되어 누릴 행복을 기대한다. 따라서 세례에 임할 때 “세례를 통해 저 하늘의 도시로 우리를 가까이 이끌어 달라고, 우리가 그 도시의 삶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청”해야 한다. 그리고 “혜택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원을 받기를 소망하며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세례는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세례 안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행하는 역사에 따라 한 몸이 된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우리 주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만든다.

2) 하나님 나라와 성찬

세례가 “두 번째 탄생”의 상징이라면, 성찬은 “두 번째 탄생”을 한 이들을 위한 “영적 음식”의 상징이다.83) 여기서 테오도로스는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을 통해 세례와 성찬의 관계를 명시한다. “모든 사람이 이 음식을 먹기에 합당한 것은 아니다. 이 음식은 성화된 자들에게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성상 필멸하고 쉽게 변하는 존재이기에 불멸하고 불변하는 이 음식을 받기에 마땅치 않다. 이것이 “세례받은 자들만 그것을 먹는 이유다. 이들은 세례의 두 번째 탄생에서 성령의 첫 열매들을 받은자들이고, 그로부터 거룩함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명된 자들이다.” 세례를 통해 다시 태어난 자들은 그들의 “탄생과 조화를 이루는 불멸의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그것으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구원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이 거룩한 성찬에 가까이 가고 이것을 받아야만 한다. 현재 존재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하듯, 우리의 미래 존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영적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와 함께 테오도로스는 “이 음식의 본성”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야 우리는 이 음식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고, 그에 합당한 자세로 이 음식을 먹고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테오도로스는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외관만 보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것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형되고, 영적불멸의 양분이 된다. 이런 “위대한 변화”는 전적으로 성령의 오심 때문에 가능하다.

이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연합되기 때문에, 이 영적 음식은 “유익”하고 “생명”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분과의 친교 안에 머물게 된다(고전 12:27, 엡 4:16).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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