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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서종표 목사-추명순 전도사의 신앙과 사역 (4)추명순 전도사의 사역 중심지 고군산군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5.09 08:00
  • 호수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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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표 목사(군산중동교회)

Ⅰ. 추명순 전도사의 생애

◆ 고난과 남편의 핍박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통해 추명순은 죽음의 고비를 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교회에서 더욱 열심히 봉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무 살 된 아들이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녀의 남편은 아들이 죽은 것이 예수를 믿는 그녀의 탓이라고 하면서 가문에서 그녀를 내쫓았다. 빈털터리로 쫓겨난 추명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서는 머리 하나 둘 곳 없다던 말씀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고, 그 길로 비인성결교회에서 찾아가 교회 청소도 하고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하였다. 병으로 아들을 잃었고, 남편에게는 버림을 받았고 시댁에서도 쫓겨났지만 그녀는 비인성결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추명순은 33살 되던 해에 비인성결교회에서 지방 전도사로 임명을 받고, 전도사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 환난, 교회의 폐쇄

일본은 교회를 박해하고, 1943년 사중 복음을 전하는 성결교회의 문을 폐쇄하였다. 모든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교회 문을 열고 예배하고 전도하다가 발각되어 경찰서에 5일간 잡혀있었다.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후에도 신자들끼리 몰래 주일예배를 드렸고, 1945년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에는 교회가 없는 마을로 다니며 전도하며 서천 원두리와 김제 용전에 장로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1957년에는 안면도에 들어가 전도활동을 했다.

◆ 고군산 전도, 김용은 목사와 만나다

추명순 전도사는 여생을 전도만 하면서 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비인성결교회에 부흥회 강사로 오셨던 김용은 목사(군산중동교회)가 생각나서 그녀는 가방 하나 들고 김용은 목사를 찾아갔다. 김용은 목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그녀를 맞이하면서 고군산 섬지역 전도에 알맞은 분이 오셨다고 말하였다.

김용은 목사는 6.25 전쟁 당시 일가족 20여 명이 공산당들에게 학살당했지만 원수를 복음으로 갚는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다. 김용은 목사는 가난과 미신, 관습에 갇혀 영적으로 어두운 고군산 섬 지역 전도를 위해 비상한 계획을 세우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 사역을 감당할 추명순 전도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섬에 가서 개척전도 하겠느냐는 김용은 목사의 물음에 추 전도사는 “복음 전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김용은 목사는 기뻐하며 고군산 섬지역 전도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원하고 후원을 약속하였다. 그래서 추명순 전도사는 1959년 52세의 나이로 선유도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전쟁 직후라 온 국민의 의식주가 어려울 때였고, 고군산 섬에는 농토가 적고 고기를 잡아 사는 어부 생활이 전부여서 굶는 집이 많아 구제가 우선 필요했다. 섬사람들은 바다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연의 위력 앞에 늘 불안하고, 바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미신이 아주 성행했다.

전에 세운 교회들이 몇몇 섬에 있기는 했는데 생활이 어렵다 보니 목회자 없이 교회 문을 닫을 지경에 있었다. 교역자들이 들어갔다가 주민들의 냉대와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섬을 떠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교역자가 부임하면 섬사람들은 “언제 돌아가십니까?”하고 묻는 것이 인사일 정도로 사역자의 사역 기간이 길지 않았었다. 그래서 추명순 전도사는 사생결단을 하고 뼈를 섬에 묻을 각오로 고군산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섬사역을 시작하며 세 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첫째는 복음을 전해서 영혼들을 구원하고, 둘째는 구제사업을 하고, 셋째는 미신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김용은 목사가 O.M.S (동양선교회) 선교부를 통해서 구호물품과 의복을 보내줘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섬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완고한 섬 주민들이 구호양식으로 인해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되었고, 구제 사역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 구호물품은 석 달에 한 번씩 들어왔고, 주로 밀가루와 우유가루, 옥수수가루였다. 모든 사람에게 구호물품을 똑같이 나눠주며 전도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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