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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빅토르 위고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사극이며 장엄한 감명을 주는 작품 레미제라블을 썼다. 완성된 원고를 출판업자에게 넘겨준 그는 기대감에 부풀어 답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일에 초조해진 그는 출판업자에게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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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25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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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와 교회의 광고판이요 편지

빅토르 위고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사극이며 장엄한 감명을 주는 작품 레미제라블을 썼다. 완성된 원고를 출판업자에게 넘겨준 그는 기대감에 부풀어 답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일에 초조해진 그는 출판업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사람의 의하여 쓰여 진 편지 중에 가장 짧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편지에는 ?(물음표) 하나 달랑 적혀있었다. 얼마 후에 출판업자가 보낸 답장도 또한 간단하고 재치가 있었다. 그것은 !(느낌표) 하나가 편지내용 전부였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의 삶에 성적이 몇 점이냐고 물어 본다면 하나님은 과연 몇 점을 주실까?우리 성도는 세상에 보내진 그리스도의 편지다. 세인들은 우리가 주는 전도지나 성경을 읽지 않지만 우리의 삶은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읽기를 즐긴다.

옛날 사람들은 추천서를 가지고 다녔다. 누가 어떤 곳으로 가면 그곳 사람에게 이 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내용이 있는 추천서를 주어 보냈다. 바울은 그런 편지를 생각했었다.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뵈뵈에게 로마교회를 방문케 하여 추천서를 보내면서 ‘그는 열성적인 교회 일꾼이니 따뜻하게 맞아주고 도와주라’고 추천서를 보냈다. 어떤 이가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스에게 추천서를 청하니 그의 대답은 “그대가 어떤 사람인 것을 보면 알 것이오. 그대가 좋고 나쁜 것은 그 사람이 분별력이 있으면 알 것이오. 만일 그런 분별력이 없는 자라면 내가 천 번을 추천서를 쓰더라도 모를 것이 아니오”고 하였다.

그러나 초대교회 안에서는 추천서가 필요했다. 바울의 유일한 추천서는(편지) 고린도 교인들이었다. 그들의 변화된 품성과 생활이 곧 자기가 요구하는 추천서였다. 그 다음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선언을 했다. 옛날 플라톤은 “위대한 선생은 그의 교훈을 히미 해질 먹으로 쓰거나 소리 없는 글로 쓰지 않고 제자를 찾아가 마음에 교훈의 씨를 심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예수께서 쓰신 방법이었다. 그는 그의 종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쓰셨으니, 흐려질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쓰셨다. 옛 율법처럼 돌에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쓰셨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와 교회의 광고판이요 편지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명예는 교인들에게 달렸다. 상인은 파는 물건으로 판단하고, 기술자는 그 제품으로 판단함과 같이 그 교회는 그 구성된 교인들로 판단한다. 신약 중 14권을 쓴 바울사도는 “너희가 우리의 편지다. 이 편지는 마음에 썼고, 또한 사람이 알게 되고 항상 읽고 있다”고 하였다.

사람이 쓴 글은 글의 내용이 쓴 사람의 마음과 똑 같을 수는 없어도, 얼굴빛으로 쓰여진 글은 너무나 정확하여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그가 보여준 ‘얼굴의 편지’는 우편에 계신 주님이 함께 있음을 그의 얼굴 글로 보여줬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하였다. 언어가 달라서 의사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쓴 언어는 서로의 의사가 통하고 나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 할 수 있다.

천사 같은 얼굴의 색깔을 유지하려면 항상 마음의 양식을 담고,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로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리하면 내가 사는 것은 육이 아니요 내 속에서 나를 지배하는 성령이 될 수 있다. 말로 하는 전도는 은처럼 필요하지만 말없이 행동으로 한 전도는 금보다 더 귀하다. 심장을 통하여 심령을 울리면서 그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성도들의 얼굴에서 24시간 읽혀지고 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고, 네로 황재가 굶주린 사자를 통해서 성도를 죽이고, 일경이 목사를 감옥에 가두어 죽였지만 순교당한 그분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를 읽을 수 가있다. 다른 사람이 읽어본 나의 편지는 지금 어떻게 읽어지며, 난 지금 나의 삶을 통해 어떤 편지를 써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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